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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희 Aug 31. 2023

통과하는 빛과 통과하지 않는 빛 (1)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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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60년대에 태어난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국민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교련복을 입고 사진 찍은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권투 글러브를 끼고 웃어 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큰누나와 작은누나와 여동생과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이 있었던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장남으로서 온 집안의 기대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학교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리면서 아침마다 여동생의 책가방을 대신 들고 뛰어 준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나를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눈이 소처럼 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차가운 도로에 뺨을 대고 누워 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늦은 밤 차에 치인 적이 없고, 나를 치고 떠나는 차의 후미등을 오래 바라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어릴 적부터 자란 집에서 나의 장례식이 열린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뺑소니로 죽어서 오래 슬퍼하다 자살한 아버지를 둔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늘 함께 등교하던 세 살 어린 여동생이 언젠가 낳게 될 아이들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나의 큰외삼촌이었던 적이 없다.



1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이모들의 머리 왼쪽에 흰 리본 핀이 보였다. 하지만 엄마의 머리핀은 잘 보이지 않았다. 돌도 안 된 나는 엄마 등에 너무 꼭 붙어 업혀 있어서 아무리 고개를 치켜들어도 질끈 묶은 머리카락밖에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묶은 머리를 향해 나는 손을 뻗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5월, 엄마의 등은 두 사람의 체온으로 이미 축축하게 젖었다. 업고 있던 나를 밥을 먹이려고 내릴 때면 엄마의 등에선 훈김이 올라왔다. 생후 9개월이던 나는 낯가림이 유난스러워서 아빠에게조차 가지 않았다. 더워서 칭얼거리면서도 엄마 품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발악하듯 울어댔으므로, 어린 짐승처럼, 엄마에게만 바싹 붙어 있었다. 나는 이따금 엄마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었고, 엄마는 땀에 엉긴 머리카락을 역시 땀에 엉긴 나의 손에서 빼내었다. 그러면 나는 끈적한 손을 다시 움켜쥐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손에 무엇이라도 있다는 듯이.
엄마는 더운 흰 상복을 입고 문상객을 맞았다. 문상객들은 대문을 열고 계속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넓지 않은 마당이며 집 안이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바람이 불 때면 어디서나 음식 냄새가 끼쳐 왔다. 마치 아직 한 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엄마의 동선을 따라 집 안 곳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그런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작은외삼촌을 자주 바라봤다. 삼베 두루마기에 삼베 모자를 쓴 작은외삼촌. 스물다섯 살 상주인 작은외삼촌은 문상객과 끝없이 맞절했다. 사위들을 제외하면 이제 집안의 유일한 남자 어른인 셈이었다. 그래서 상주가 됐고 갓 가장도 됐으나 그런 걸 혼자 감당하기엔 아직 버거워 보였다.
그러나 내가 그날을 기억하기 때문에 이 풍경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의 얘기를 토대로 기억을 재구성해 낸 것도 아니다. 어째선지 알 수 있었다. 나조차도 이유나 방법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저 알았다.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부엌 뒷문 쪽을 바라본 것도 그래서였다. 방금 외할머니가 그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로 외할머니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장독대를 향해 걸어가던 외할머니가 문득 주저앉았다는 걸.
그건 넘어지거나 다리에 힘이 풀린 건 아니었지만 외할머니는 잠시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상복 치마 아래 무릎을 짚으며 아주 느린 몸짓으로 일어섰다. 평소와 달리 아무 소리도 없었다. 외할머니는 앉고 일어날 때면 무릎 통증 때문에 으레 앓는 소리를 냈으나, 그 순간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고요했다. 그리고 외로워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외할머니는 장례식 내내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내비치지도 소리 내어 울지도 않았다.
쟁반에 음식과 막걸리를 챙긴 엄마가 부엌을 나섰다. 나는 좁은 부엌을 쉼 없이 들락거리던 걸음을, 끊임없이 퍼져 나가던 고소하고 따뜻한 음식 냄새를, 앞으로도 이곳에 올 때마다 기억하게 될 어딘지 쿰쿰한 시골 부엌 냄새를 뒤로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엄마가 마당 손님상에 막걸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굽혔던 허리를 느릿하게 펼 때, 문상객이 새로 따르는 막걸리 냄새가 퍼질 때, 그때 나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새 에미를 더 닮았네.
외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떻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하지만 분명 그 목소리였다. 전에도 들어본 적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산후조리를 막 마친 엄마가 나를 데리고 찾아뵀던 날, 외할아버지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었다. 에미 어릴 때랑 아주 똑같네.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귓가에서 들린 것처럼 가까웠는데, 근처에 누가 오거나 말을 걸기만 해도 울어 젖히던 나는 웬일인지 그 목소리를 듣고도 울지 않았다. 그저 작은 눈만 약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어린 나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 외할아버지는 지금 슬프지 않은 것 같다고. 외할아버지 본인의 장례식인데도, 목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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