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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희 Aug 31. 2023

통과하는 빛과 통과하지 않는 빛 (3)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큰외삼촌의 시선이 책장 구석에 다다르는 걸 보고 나는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거기엔 자살을 다룬 책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제목들을 읽고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일은 집안에 일어난 큰 슬픔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가족들에게 물을 수 없었다. 조심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존중의 방법이었다. 나는 슬픔을 자극하는 대신에 혼자 자살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그 일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큰외삼촌은 창밖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열지도 못하고, 벽을 통과하거나 하는 대단한 능력조차 만약 없는 거라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리를 떠돌며 보내는 걸까.
큰외삼촌에 대해,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 나를 찾아왔는지.
큰외삼촌.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외삼촌을 불러 보았다. 큰외삼촌 역시 처음으로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저를 찾아오신 게 맞아요?
나는 물었다.
엄마한테 모셔다드릴까요?
큰외삼촌을 만난다면, 엄마는 모든 게 의문투성이인 나와는 아주 다를 것이다. 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는 불현듯 찾아온 나를 보고 가볍게 놀랄 거다. 기분 좋은 반가움을 느끼다가 뒤에 있는 큰외삼촌을 보고는 굳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그러고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엄마가 어떤 표정과 어떤 말로, 또는 쉽게 나오지 않는 말들로 자신의 오빠를 맞이할지 선연히 그려졌다. 그 많은 육 남매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제일 잘 맞았다는 바로 위 오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자라난 사람이었다.
큰외삼촌을 마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하지만 큰외삼촌은 대답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물으려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고요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큰외삼촌이 한 번 더 말했다.
나는 괜찮아. 그러지 않아도.

시계가 멈추는 순간을 본 적이 있다. 언제나처럼 한 칸씩 움직이던 초침이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고, 늘 그랬듯 다시 움직일 것 같았으나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태도였다. 마치 원래 흐른 적 없던 것처럼, 움직이던 날들이 착각이라는 듯이.
나는 그 이야기를 큰외삼촌에게 했다. 그리고 물었다.
죽음도 비슷한가요?
마주 앉은 큰외삼촌은 역시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쏟아 내는 질문 대부분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물었다.
엄마를 보고 싶어서 온 게 아니면, 제가 뭔가 도울 수 있어서 온 거 아닌가요? 그 뺑소니범, 그 차, 번호판, 차의 색깔, 운전자의 얼굴, 그 사람이 내려서 삼촌을 봤는지, 아니면 내리지도 않고 핸들만 쥐고 있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공소시효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찾으면 식구들 앞에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사과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라고. 삼촌은 지금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들은 감정이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는 거잖아요.
외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오빠와 아버지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잃어야 했던 엄마에 대해서도. 그 후로 엄마가 오래 견뎌야 했던 진흙 같은 우울과 슬픔에 대해서도. 큰외삼촌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 슬픔들의 시작에 큰외삼촌이 있었다.
하지만 큰외삼촌은 고요하고 무해한 얼굴로 나의 말을 전부 들을 뿐이었다. 마치 정말 다 괜찮은 사람처럼. 그 일을 잊은 건지 소용없음을 아는지, 오래전에 용서를 한 것인지는 몰라도.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찾아왔느냐는 물음에도, 엄마를 위해서라도 찾아가 주면 안 되는지 물어도 큰외삼촌은 답해 주지 않았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찾아왔는지, 죽은 이들은 그동안 어디에 머무는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죽은 사람이 찾아왔으니까 나는 뭔가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다. 비밀을 알게 되거나 무언가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 대체 죽음은 무엇인지 나는 물었다.
대답이 돌아왔다.
설명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는 큰외삼촌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 자신을 죽인 사람에 관해 물을 때도 평온했는데.
그래서 더 묻지 못했다. 대답하기를 거절하는 말이 아니라, 어쩌면 정말로 본인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 봐. 죽음은 이미 겪은 사람조차도 알 수 없는 걸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떤 대답도 해 주지 않는 큰외삼촌과 마주 앉아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에 대해 상상하기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점은 있었다. 이렇게 눈앞에 있어도 사실 큰외삼촌은 몸이 없고, 몸이 없으니까 아플 일도, 다시 차에 치일 일도, 다시 죽을 일도 없다. 아버지를 잃을 일도 없다.
나는 그 장례식을 알고 있었다. 큰외삼촌이 없었던 그날에 나는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곳. 남색 대문에 하늘색 지붕을 얹은 집. 몇 년 전에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신 뒤로 그 집의 대문은 굳게 잠겨 있을 것이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가끔 찾아와 집을 돌볼 때만 문을 여니까. 큰외삼촌은 그 집 안으로 혼자선 들어갈 수 없었을 거다. 그곳에서라면 내가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근처에만 머무르셔야 하는 건 아니죠?
의아한 얼굴로 큰외삼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했다.
안성에 가요. 외갓집으로.

차 키를 챙겼다. 그 길로 안성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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