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를 지나며 알게 된 관계의 거리
지난번 한 친구에게서 아버지 부고 문자를 받았다. 그 친구는 결혼식 이후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결혼 전까지는 한 번도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었지만, 결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는 관계가 되었다. 서로의 결혼식에도 참석했고, 그 이후로는 나름 괜찮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친구는 집이 멀어졌고, 자연스럽게 얼굴을 보는 일도 줄어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멀리 가면서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이 아주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고 연락을 받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걸 왜 나한테 보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부고 문자를 보내는 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연락하고 말았을 것 같은데, 나에게까지 연락이 온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로나 놀람보다도 당황스러운 감정이 더 컸다. 만약 이 친구가 내 절친이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장례식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 나한테 보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것 자체가, 내가 그 친구를 어느 정도 거리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문자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어서 간단한 위로 메시지와 함께 부의금만 전달했고, 장례식에는 따로 가지 않았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내가 너무 냉정한 사람인가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경조사는 무조건 챙기는 편이라며,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어도 장례식에는 꼭 참석한다고 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쓰고 싶었다. 나중의 인간관계를 위해서, 혹은 언젠가 있을 나의 경조사를 위해서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확실히 느꼈다. 경조사를 겪고 나면, 친구라는 이름 안에서도 관계는 분명히 갈린다는 것을. 이 친구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았을 때, 기꺼이 시간을 내어 달려가 위로해줄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마음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