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삐뚤어 질테다.

못났다.

by 바다에 지는 별

우산을 써도 소용없을 법한 장대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그녀는 가뜩이나 작은 눈이 더 찢어질세라 하늘을 노려보며 중얼거린다.


'아.. 뭐야.. 발 다 젖게 생겼네.. 에이씨...'


다 젖을 걸 각오하고 나선 퇴근길.

우산을 뚫을 것 같은 빗줄기가 그녀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역시나 5분도 되지 않아 그녀의 바지는 그녀의 튼실한 다리를 격렬하게 끌어안았고 신발에서는 야릇한 소리가 그녀의 귀를 거슬리게 했다.


전철역까지 15분 정도의 거리를 걷는 동안 뒤통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이 젖어버린 그녀.

전철역 입구는 우산을 접고 펴는 사람들로 더욱 분주했다.


앞머리를 털어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이미 비를 털어내기 위한 모든 액션을 포기한 그녀는 접은 우산을 그나마 몇 번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몇 달째 혜진의 모든 일상은 이런 식이었다.

굳이 애쓰고 싶지도 않았고 인위적인 어떤 액션도 다 귀찮았다.


계단을 내려가다 마주친 어린 연인 한 쌍.


여자 친구의 머리를 털어주는 남자의 손 길과

눈 빛에서는 애틋함이 흘러넘치고

그런 여자의 눈 빛에서도 즐거움과 고마움이 뚝뚝 떨어진다.


'야야야~!!!!! 니네 누가 보면 중병 걸려서 수발

하는 사람들 같다야.. 두 번만 비 맞다가는 아주 눈물바다 되겠네.. 하이고.. 여자애 태풍 불어도 끄떡없게 생겼구먼. 쳇!!!!'


'뭐야? 저것들은? 그렇게 홀딱 젖고서 둘이 찰싹 붙어가면 좋냐?...찝찝하겠구만..앵간하네...흥!!!!'


혜진은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몇 달 전 혜진은 그녀의 절친인 희수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호감을 갖고 있던 진환이와 사귄다는 얘기를 듣고 난 뒤부터 이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도 안다.

그녀 스스로 지금 이러는 자신의 모습이 못났다는 걸.


하지만 혼자만의 사랑이었으나 작은 사랑을 키워왔던 자신에게 사랑과 우정이 하루아침에 칼을 겨누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 자신에게만 그 쉬운 사랑 한 번 쉽게 오지 않는지 억울해진 혜진은 급기야 그 둘과의 절교를 선언하고 기계적인 일상에서 엄한 사람들에게 독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아!!! 뭐어!!!!! 그냥 좀 냅둬어어~~!!!!! 밥 안 먹어어!!!!!"


휴일 아침 혜진의 늦잠을 깨우는 엄마의 반복된 호명에 혜진은 짐승의 소리를 내며 포효하고 있었고 요즘 들어 30대를 향해 달리는 딸년이 중2병을 닮은 요즘 처사에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해진 혜진의 엄마는 급기야 그녀의 침대로 득달같이 쫓아 들어 손바닥 면적에 충분한 그녀의 엉덩이를 향해 스매씽을 날렸다.


'찰싹~~~!!!!!!!!!'


"앜!!!!!!!"


"이년이 진짜!!!! 야!!!! 너 요즘 왜 그래? 어? 다 늙어서 사춘기 하냐? 이년이.. 진짜!

오냐.. 이 엄마는 갱년기야.. 이 년아!!!! 그런 엄마를 위해서 밥 좀 하고 집 안 일도 같이 하면 얼마나 좋아? 야!!!!! 나도 이제 좀 쉬자!!!!"


독기가 가득했던 혜진의 눈빛은 원시림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였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알았어어~~! 아.. 요새 피곤해서 그래.. 미안해... 같이 밥 먹자.. 엄마.. 내가 설거지 할게."


혜진은 자신이 요즘 분노조절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것을 인정했다.

어른답지 못한 자신의 악다구니가 통할 리 없는 엄마와의 이 싸움에서 패했음을 인정하고 금방 맞아 얼얼해진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아침 식탁에 앉았다.


"혜진아!!! 너 요새 휴일에 왜 잠만 자냐? 약속도 없어? "


"그냥.. 다 귀찮아서 그래. 피곤하고... 집에서 쉬는 게 제일 좋아. 별 거 없어. "


"요새 희수는 왜 안 만나? "


"희수 요새 연애한다고 나 만날 시간 없어. 진환이랑 사귄대. "


"어이구!!!!!!!"

'찰싹!!!!'

이번엔 등짝 스매싱을 날리시는 엄마.


"아!!! 왜!!!!"


"야!!!! 너 그래서 그러냐? 요새? 어? 네가 무슨 조선의 여인도 아니고 마음만 품고 있으면 누가 알아준다고 하디? 거봐. 이 년아!!! 희수도 너 진환이 좋아하는 거 다 알면서도 지 실속 챙겨서 진환이 채가는데 너는 뭐했냐? 어? 진환이 작년에 번듯한 직장 들어가고 희수년이 눈독 들일 때 그때부터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이구.. 등신!!! 밥이나 먹어!!!!"


"아!!!! 뭐!!!! 내가 좋아하면 다 서로 좋아하게 되는 거냐고!!! 아니니까 진환이도 계속 그냥 친구로 지냈던 거지. 몰라. 얘기하지 마. 나도 짜증 나. "


"야!!! 남자.. 별 거 없어. 지 좋다고 하는 여자 애지간하게 아니지 않으면 남자들 잘 거절 안 해. 들이밀어라도 보지 그랬어? "


"엄마!!! 그만해. 이미 희수랑 사귀는데 뭐하러 그런 얘길 해. 됐어. 둘이 잘 먹고 잘 살라 그래. 나 신경 안 써. "


"미친... 신경 안 쓰는 년이 맨날 신경질에, 악 쓰고, 옷도 그지같이 입고 다니고 정신은 맨날 넋 나간 년처럼 멍하게 있냐?"


"몰라. 다 귀찮아. 이러다 말겠지.. 뭐.. 그만해. 밥 맛도 없구먼 자꾸 그런 얘기해. "


혜진은 아침부터 선물 받은 엉덩이와 등짝 스매 씽의 얼얼함보다 자신의 변화에 대해 엄마가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더 얼얼하고 미안했다.


혜진과 그녀의 엄마는 성격이나 외모가 매우 비슷해 적은 대화 내용에도 서로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사이였다.


혜진의 마음을 무엇보다 잘 알아차렸을 그녀의 엄마에게 괜히 미안해 혜진은 엄마의 숟가락에 갈치 한 점을 얹어 주었다.


'엄마... 나 괜찮아.'라는 말을 대신하듯.




https://youtu.be/cIGgSI1 uhKI



꽃이 언제 피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날씨가 언제 풀리는지 그딴 거 알면 뭐 할 건데

추울 땐 춥다고 붙어있고

더우면 덥다고 너네 진짜 이상해

너의 달콤한 남자 친구는 사실 PC방을 더

가고 싶어 하지 겁나 피곤하대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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