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에 지는 별 Oct 09. 2016

그 어떤 인연도 당연하지 않다.

남과 여 영화 후기. 스포 탱천!!!!

내가 몇 개월동안 극도로 매우 주의한 것이 있다.

드라마와 영화이다.


겨우 소생 중인 내게 작은 감정의 파도조차도

큰 파장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멜로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렇게 환장하는 공유때문에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전도연배우 때문에 과감히 멜로영화지만 선택했던 것이다.


내 컴플렉스 콧방맹이 소리를 닮은 배우라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를 보리라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다.


그녀의 영화 대부분은 감정이 매우 절제되어 있다.

모든 감정선이 폭발하여 마음에 폭풍을 불러오는 영화보다는 잔잔하게 스미듯, 담담한 표현이 내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불륜영화라고 했다. 세간에서는.

그 타이틀이 맘에 안 들었지만 그녀가 택한 영화인만큼 섬세하고 조금은 가볍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포스터의 글들이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지만..나는 이 포스터가 제일 맘에 든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가진 두 사람.

우연한 기회에 우발적인 충동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이 후 그들의 재회는 필란드가 아닌, 8개월 후  한국에서 이뤄진다.


순전히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인연이란 것은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운명이란 것에 기대어  

그 노력이란 것을 애써 외면했으나 지금에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애씀이 있어야 그 인연도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어서인지 기홍(공유 분)의 노력이 참 아름답고 따뜻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만큼 기홍에게는 절실함과 열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내와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 하지만 자신이 빠진 삶에 지쳐갈 때 즈음 그녀를 사고처럼 안게 되었다.


평소 그리 큰 감정의 기복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그리고 자신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지내왔던 자신에게 그 한 번의 일로 그는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변해 있었다.


그래서 기홍은 그녀를 따라 한국으로 왔고 그녀가 얼핏 말한 남산 어느 갤러리를 찾아낸 것이리라.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의해 정해진 시간을 살았던 그에게 그런 열정과 절실함은 낯선 것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 어떤 기준이나 먼 미래를 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이 하고 싶고, 가고 싶은대로 한치의 흔들림없이 나아갔다.


거침없는 기홍의 모습.

상황이 어떠하든 기홍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의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변을 힘들게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 어떤 연결고리도 만들지 않았죠?  하지만 내가 그대 눈 앞에 있어요.  지금...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왜라는 질문은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사랑 앞에 거침없이 앞으로 질주할 수 없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고 그 것들로 인해 그들은 이기적이게 과한 욕심을 낼 수도 없었고 둘의 성격상 그런 욕심을 내지도 못 했다.



그저 소박한 만남.

소박한 식사. 그리고 짤막하고 감정 꾹꾹 눌러담은 문자메세지와 1분이 넘지 않는 통화가 전부였다.


절제되어 있지만 그들은 급하지도, 이기적이지도, 회피하지도 않았다.


둘이 있을 때에는 그저 해맑은 기홍의 모습이 예뻤고 그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상민(전도연 분 )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더 이상의 어떤 기대나 약속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에 슬퍼하기 보다 그저 자신들이 나눠가질 수 있는 만큼만 주고 받을 수 있었기에 그들은 아이처럼 즐거워 할 수 있었으리라.

그대와의 소박한 시간들이 그 어떤 호화로운 순간들보다 오래 오래  내 일상을 견디게 합니다.

상민은 그에게 자꾸만 선을 그어댔다가 그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은 어느 날 말했다.


우리 큰 일났다고...


오히려 그 두사람에게보다는 그들의 배려와 노력과 애씀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상대들에게 큰 일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누구나 사연은 있고 각자의 이유들이 있다.

억지로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많은 사연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


장애아를 가진, 질환을 가진 아이를 양육하는 상황말고는 사실 그렇게 특별한 배우자의 문제를 돌출시키지는 않았다.

물론 작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핑계거리처럼 인위적인 이유를 붙이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핑계거리를 찾는 듯한 특별한 이유가 아닌,일상생활 속에서 점점 비어가는 우리의 영혼이 그 이유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에 도피처로 사랑을 택한다는 내용이 아니라서 좋았던 것이다.

그저 우리는 긴긴 인생을 살면서 격정적인 사랑보다  서로를 챙겨주고 서로를 따듯이 안아주며 눈을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마저 없이 그저 한 공간안에서 숨만 함께 쉬는 존재로서의 건조함은 격돌하는 관계만큼 위험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슴뛰지 않아도 된다.

뜨겁지 않아도 된다.

찌릿찌릿하지 않아도 좋다.


대신 서로를 고마워하고 가여워하며 서로를 넉넉히 안아줄 수 있는 따스함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주인공 둘의 성격은 닮았다

감정변화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욕심도 없는...그런 최소한의 조건만 주어졌더라면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를 밀어냈을지도 모른다.



상민이 독립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가 물론 사랑이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관계에서 의무만 가득한, 자신은 한 조각도 남지 않은 그 시간들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일상의 자리가 그들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아 둘은 이별을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상민이 기홍을 찾아 그 먼 나라로 간다.

기홍이 그랬듯이 그의 주변에서 그의 존재를 지켜본다.



그는 여전히 자상하고 따뜻한 가장으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프기도 했을테고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기홍과의 인연을 꼭 이어보겠다는 욕심보다 그가 많이 그립고 보고 싶었을 그녀가 보게 된 광경들은 자신이 처음 기홍을 밀어내었던 이유처럼 기홍 또한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을 상민도 어렴풋하게 깨달았을 테다.


기홍의 가족의 모습을 뒤로 하고 택시를 타고 자리를 뜨는 상민에게 걸려온 unkown의 전화.



혹시나 했지만 전 남편의 전화였다.

아들이 상민을 찾는다는 얘기를 남기고 아들을 바꿔주는 전남편.


역시 그 한 통의 전화는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엄마였으니까.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라는 생각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인정과 함께  기홍 또한 자신처럼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아픈 마음을 눈물로 쏟아내었을 것이다.


기홍 또한 상민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서 수없이 갈등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다.

 

달려갈 수 없지만 그대가 와 주었습니다. 내 앞에 그대가 와 주었습니다.   우리의 인연을 다시 이어가고 싶지만...그대를 안고 싶지만..


그런 기홍에게 그의 아내가  건낸 아픈 말 한 마디.


고맙다고...

그냥 고맙다고...


죽어 있었던 과거의 자신은 사라지고 이미 자신의 살아 있음을 알아버린  기홍에게 그저 제자리에서 곁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큰 아픔이고 슬픔인지 그 아내도 분명 알아차렸으리라.


하지만 철저히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기홍의 아내의 입장에서는 미안함 가득하지만 그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가 아파할 걸 알면서 그를 다시 자신의 새장에 가두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사랑이 필요없는 나이는 없다.


누구나 곁에 내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랑이란 것이란 것 때문에 외로워하고 방황하기도 하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그 결과가 어떤 댓가를 요구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 댓가를 지불하고서도 사랑을 택하는 이유가 될만큼 사랑은 중요한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본 후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상민이 남편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고백했을 때 남편의 표정이다.


설마...라는 표정.

그리고 절박하게 상민을 잡으려는 그의 외마디 고함.


영화 내내 그 어떤 장면에서도 남편이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늘 동동거리며 워킹맘으로 일하는 상민의 모습만 비춰졌다.


일상은 다 전쟁이다.

둘 중 힘이 더 세고, 시간이 더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힘든 건 마찬가지이다.


늘 버겁고 힘든 상민이 그나마 아이 얘기를 하면 남편은 그저 남의 아이 상담하듯 했다.

그것도 상민에게 책임전가까지 하면서...


시간이란 것이, 상대의 배려가 그렇게 한쪽을 뻔뻔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일상적인 부분에서부터 서로의 관계에서

 비는 곳이 생기는 것이란 걸 알아차렸다면 그런 당혹스럽고 충격적인 상황을 만났을까?


어쩌면 너무 수순이었을 상황인데

그의 당황스러움조차 뻔뻔해 보였다.




당연한 것은 없다.

처음의 뜨거운 사랑이 지나고 나면

잔잔한 사랑으로 흐르게 될 때 그 당연함이란 것에 자신의 노력을 미뤄두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꼭 댓가를 치뤄야할 순간이 찾아온다.





기홍과 상민의 사랑은 특별하지 않다.

파격적이지도 않다.


그저 따뜻하고, 잔잔한 감정의 흐름이 참 아름다운 사랑이다.

욕심내지 않고 누군가를 상처주지 않고 서로를 바라봐주고 안아주는 사랑.


자신의 파트너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사랑 아닌가?

일상에서 동떨어진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고,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일상을 함께 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은 그 자리를 비우지 않고 함께 해 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사랑 아닌가 말이다.


소박하고 성실한 자신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어리광 피우지 않는 성인으로 곁에 있어주기.


늘 내가 쓰는 글의 주제와 너무 맞아 떨어지는 영화여서 참 신기하고 좋았다.



가지지 못할 미래를 욕심내지 않았기에 우리는 불안하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