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빚보증으로 대학의 꿈을 접고 취직을 하게 되고, 억척스러운 엄마의 생활로 겨우겨우 생활을 하고 있는 스무살 나영.
생활이 되어버린 자신의 삶도 지겹고, 무미건조하고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부모의 모습에 자신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기대나 희망마저 외면해 버리고 있는 스무살 언저리의 그녀.
어느 날 그저 그림자처럼 묵묵히 직장생활을 하며 지내던 아버지의 가출로 예기치 않은 여행을 떠나게 된 나영은 자신의 엄마, 아빠가 되기 전의 풋풋한 스무살 무렵의 부모를 시간여행에서 만나게 된다.
글을 모르는 섬소녀 연순과 우편 배달부 진국과의 풋풋한 사랑.
잔잔하고 참 아름답다.
그저 순수하고, 해맑아서 더 가슴 짠한 그들의 순정이 너무 예쁘다.
이별의 시간을 넘기고 사랑이 이루어졌으나
세월 속에 여러 풍파를 겪으며 평범한 여느 부부의 모습으로 나이를 먹은 두 남녀.
남자는 나이들고 병들어 은퇴를 하고 자신의 순박하고 착한 여인을 만났던 과거 그들의 그 섬으로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는 젊은 시절 전근 발령을 받고 떠나기 전 그녀를 바라보았던 그 자리에 서 있다.
억척스럽게 변해버린 사나운 아줌마의 모습의 여인이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 온다.
너무 많은 시간과 세월의 풍파가 그들의 사랑을
퇴색시켜 버렸으나 결국 남자는 그녀를 만났던 그 곳에서 그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지금은 생활이 되었어도 자신만의 순수하고, 가슴시린 사랑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은 시간과 함께 희미해지기도 하고, 퇴색하거나 변색해 버리기도 해서 사랑이나 정이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순간,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없이 누군가를 가슴 절절하게 그리워 하고, 함께 하고 싶어 애 닳아 했던 그 순간이 있었다는 건 설령 그것이 이별이나 원망, 슬픔으로 남는다고 해도 그 시간의 서로는 참으로 누군가를 향해 뜨겁게 가슴 뛸 줄 아는 뜨거운 심장을 가졌다는 뜻이니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는 의미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보여지는 조연이나 액스트라들의 모습이 유난히 작게 보여 하나의 풍경처럼 녹아 드는 장면들과 사람들이 때밀이라고 하대하며 부르는 목욕 세신사인 연순이라는 사람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풍경이 닮아 보였다.
개인의 인생으로 보면 매우 각별하고 특별해 보이는 자신의 삶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스치는 풍경이 되어버리는 것 그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먼 풍경의 인생이지만
인생의 한 조각인 사랑이란 이름은 그래도 조금은 각별하게 생각이 들기는 한다.
사랑.
어떤 현재를 살아가고,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름을 쓸 수 없어졌다고 해도, 그저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처럼 한때는 자신에게도 그런 좋은 시절이 있었음을 읊조리는 시간을 산다고 해도 그 순간들은 한 사람의 인생에는 유의미한 것일테다.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변해가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변하지 않는 두 사람의 진심과 진실이 있었던 그 시간.
모든 것은 한때이고 다 시간과 함께 흘러가지만 반짝여야 할 순간에 가장 빛날 수 있었던 내 인생이 아름다웠다고...
나도 그럴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어차피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갈 즈음에는 내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챙겨 가고 싶은 것 중 작은 추억 한 조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