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삐뚤어질테다

내게서 무의미해지려는 너

by 바다에 지는 별

맞은 편 김과장님은 오후 4시가 넘어서도 혜진에게 줄기차게 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아마도 이렇게 가다가는 야근은 정해진 수순인 것 같아 혜진은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혜진씨~!!이거 명단 정리 마무리 오늘 해 주고, 이번에 이사님 지시로 관공서 들어가는 쌤플 만들면서 같이 들어가는 상품 설명 초안 좀 만들어 봐요. "


혜진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며 대답했다.

"네. 과장님!!"


대답과 함께 찾아온 갑갑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혜진아..오늘 저녁 잠깐 볼 수 있을까?

진환의 문자였다.


혜진은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가면서 답을 했다.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은데?

바로 진환의 문자가 도착했다.


버스 타면서 나한테 문자 줘. 내가 준비하고 있다가 나갈께.


참 별일이라고 생각하는 혜진이었다.

시기상으로 보면 지금 한참 좋아서 옛정이든, 우정이든, 애매한 뭐가 됐든 신경 쓰기에는 참 바쁜 시간인데 퇴근이 늦어지겠다는 자신의 문자에도 기다리겠다고 답을 하는 것일까 의아했다.


다시 답을 했다.

그래..그럼 나중에 문자하지..뭐..


진환은 바로 그러겠다는 답을 보내왔고 혜진은 볼 일을 보고 손을 닦고 핸드타올로 닦으며 거울을 보았다.


출근해서 커피 한 잔 마신 후로는 화장 한 번 수정할 시간 없이 지금까지 일한 탓에 얼굴 여기저기는 얼룩이 져 있고 눈 밑의 마스카라는 살짝 다크써클과 함께 검은 빛으로 번져 있었다.


닦았던 핸드타올의 덜 젖은 부분으로 눈 밑을 살짝 지우며 한 숨을 쉬었다.

요즘들어 자신한테 일거리들을 쉬지 않고 주는 김과장의 행태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다.


휴가조차 내기가 눈치가 보일 만큼 바쁜 요즘.

혜진은 현수와 함께 했던 제주도의 푸른 밤바다와 밤 하늘이 그리웠다.


한 숨을 쉬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혜진은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식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일은 9시 쯤이나 되어야 대충 마무리가 되었고 혜진은 화장을 고치고 회사를 나서며 진환에게 출발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진환은 헤진이 내리는 버스 정류장 두 정거장 전 버스 정류소 주변의 까페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답을 하고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해 혜진은 한적한 버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심코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 진환이 왜 자신을 보자고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진환을 보자고 한 자신도 이상했다.


희수의 그 독기어린 눈 빛을 기억해 내었더라면 진환의 약속에 응하는 게 조금은 불편했어야 했으나 그 당시 혜진은 희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이래도 되나 생각해 보던 중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현수의 톡이었다.


빼곰히 고개를 반 쯤 내민 이모티콘이 먼저 뜨더니

어디십니까아~!!!

라는 글이 뜬다.


이 인간은 늘 이런 식이다.

내가 자기 직장상사도 아니고, 자기 군대 선임도 아닌데 이런 말투는 도대체 왜 안 고쳐지는지....

답을 했다.


퇴근 중이십니다. 현재 스코어.

바로 톡이 뜬다.


오오오~!저도 퇴근 중입니다만.

네. 알겠습니다.

아~?? 이거 뭡니까? 나 어딘지 물어보지도 않는 거 좀 서운합니다?

아...물어봐야 하는 거였습니까? 그럼...음...어디십니까?시방?


저...혜진씨 네 동네입니다. 혜진씨가 저 궁금해 하실까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나 무척 바쁜 사람인데 말입니다. ㅋ


아...그렇습니까? 무척 감사하지만 오늘 제가 약속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쩌지요? 아쉬우시면 저희 집 주변 동네 한 바퀴하고 가셔도 된다고 애들한테 소식 넣어 놓겠습니다만.


혜진씨...저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ㅠ.ㅠ 말투가 자꾸 따라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현수의 톡을 읽기도 전에 숙대 앞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와서 혜진은 급히 가방을 챙겨서 내렸다.


내려서 약속 장소로 향하다 신호등에 걸려 기다리다가 보다가 만 현수의 톡을 확인한다.


그리고 저 오늘 혜진씨랑 할 얘기도 있는데 잠시만이라도 보고 가고 싶은데 언제쯤 오십니까?

한 시간은 안 걸릴 것 같긴 한데..모르겠네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그렇고..제가 30분 뒤에 다시 톡할께요.

네. 알겠습니다. ^^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70212151116_0_crop.jpeg 일상의 바쁨에서 잊혀지는 일들이 있다는 게 조금 고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신호가 바뀌고 걸음을 옮기며 혜진은 희미하게 웃었다.

분명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남자 구경하기 힘들던 자신에게 지금은 더블약속으로 조금은 바빠진 상황이 우스웠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진환이 창가 자리에서 혜진을 보고 있었는지 열고 들어오는 혜진의 눈과 바로 마주쳤고 진환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혜진이 자리에 앉으니 진환이 일어서며 얘기했다.

"뭐 마실래?"

"아..로즈마리. 고마워.."

"응응."


차를 혜진의 앞으로 갖다 놓으며 진환이 자리에 앉는다.


혜진이 한 모금 마시고 진환에게 말을 했다.

"왜 데이트 안 하고 이 시간에...왜 무슨 일 있는 거야?"


진환은 웃지 않고 말했다.

"혜진아..나..좀 비겁해 보일 수도 있는데...그냥 너한테는 말을 해야할 것 같아서..."


진환은 잠시 침묵했고 혜진은 그런 진환을 마주 보았다.

진환이 말했다.


"나 희수..그냥 그래..그런 상황에서도 네가 마음에 많이 걸리더라. 언젠가 만나서 말이라도 하고 싶었어. 어떤 말이 되었든. 일단은 너한테 좀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


혜진은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이 들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진환의 말을 계속 기다렸다.

그래야 자신의 지금 감정의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랑 왠지 어색해 진 것도 싫었고 희수랑 그렇게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있지. 나 희수랑 잘 안 될 것 같거든. 너랑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는데 그냥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러고 싶어서...미안해.."


혜진은 입을 열었다.


"진환아! 네가 왜 이런 자리를 불편을 감수하고서 만들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 너 나한테 잘 못한 거 없고, 니네 둘이 사귀는 것에 대해서도 나한테 죄책감 같은 거 느낄 이유는 없는 거야.

그런데 네가 나한테 편하게 지내자는 것도 그렇고 희수랑 그저 그렇다는 말도 그래. 희수랑 잘 되든 안 되든 그건 니네 둘 문제고 네 문제야. 그런데 나한테 얘기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얘기들은 취한 희수를 데려다 주기 전에 했었어야 하는 얘기들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 네 욕심이야. 이기적이라고 하는 게 맞아. 내가 니네 둘이 잘 되든, 안 되든 내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네 마음에 답을 알려 줄 만큼 내가 남의 감정에 오지랖이 넓지가 않다. 네 얘기 듣다보니까 진환이 너란 애가 내가 생각했던만큼 괜찮은 애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편하게 보자는 말. 글쎄...나도 자신은 없다. 나 너 얘기 더 듣고 싶은 맘도 없고 약속도 있고...그만 가도 되지?"


진환은 일어서는 희수를 불러 세웠다.

"희수야. 너 길 건너오는 거 봤어. 그렇게 웃는 모습 참 좋아보이더라. 너 요즘 만나는 그 남자. 누군지 알고 있어?"


희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https://youtu.be/RP6ELXqj0hI

여기서 이제 그만....


후기.

오랫만에 놓았던 소설들을 써내려 가봅니다.

오랫동안 손을 놓았다가 제일 첫 글부터 읽어내려 가는 동안 참 어쩔라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다시 글을 쓰면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역시...어렵네요.

다시 힘을 내보려 하는데 반짝하고 불이 들어올런지 심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잊혀졌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합리화해보려 노력하지만 역시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네요...


네네...자신없어서 궁시렁거리는 중입니다..ㅋㅋㅋㅋ 그냥 반갑게 읽어주세요.


열심히는 못해도 조금 애써보려는 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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