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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바다에 지는 별
Mar 19. 2018
계절의 흐름대로 함께 흘러가며 산다.
리틀포레스트 영화후기
예고편을 보며 그냥 꼭 보고싶어
예매를 해 버린 영화이다.
딸과 처음으로 단 둘
이
보는 영화
이
지만
딸은
평소 나와 비슷한 케릭터이며
나와 비슷햐
취향을 가진 것으로 보아 무난할 듯 했다.
나는 최근 시력이 많이 떨어져 상영관 번호도 잘 보이지 않아 반봉사 시늉
을
한다.
그런 나를 위해 딸이 화장실도 알려주고, 팝콘이랑 콜라도 사준다.
덕분에 팔짱을 끼고 상영관으로 향하면서 진짜 나이를 먹고 자식에게 의지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으바
스런 생각에 잠긴다.
등장 인물을 소개한다.
대학 졸업 후 임용고시에 떨어진 후 편의점 알바
로도
생계유지가 되지 않아 다시
시골
집으로 돌아온 혜원.
고향의 농협 여직원으로 도시상경을 꿈꾸는 혜원의 친구, 은숙.
치열한 직업전선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귀농을 선택해 과수원을 하고 있는 재하.
충분히 닳고 닳은 직장인으로 살다가 퇴역한 군인같은 느낌이 아니라 풋풋하게 어린 친구들의 귀농과 시골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토리 전개의 개념보다
삽화나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의 영화이다.
계절의 흐름대로 바뀌는 자연풍경과
바뀌는 계절이
주는 선물을 잘 활용하고, 저장하고, 요리해서 먹고사는 것이 영화의 주제이다.
그리고 다양한 계절 풍경과 함께 다양한 소리가 장면 내내 이어진다.
바람이 풀들을 스치는 소리, 눈 밟는 소리, 비오는 소리,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 바삭하게 음식이 씹히는 소리들이 장면장면 매우 확대, 강조된다.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과 정신을 비우고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거창한 스토리나 감동은 없지만
기분좋고 마음과 정신이 릴렉스되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면은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비를 마루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너무 기분이 아늑하고 좋아져서는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가슴쪽으로 다리를 끌어당겨 앉았다.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의 냄새와 소리를 모두 즐기는 것.
그리고
혜원의 엄마와 혜원이 한 여름 평상에 앉아 토마토를 먹으며 아빠 이야기를 하던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혜원이가 4살 되던 해.
아빠의 요양목적으로 시골로 내려왔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엄마는 도시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혜원은 엄마에게 질문한다.
연애하고 싶지 않느냐고.
아빠가 보고 싶냐고.
그 질문에서 잠시 장면이 멈춘 듯 천천히 흐르고...
다 먹은 토마토의 밑둥을 밭 언저리에 던져버리는 엄마.
그리고 혜원의 나레이션.
먹다버린 완숙의 토마토는 그 밑둥에 남아있는 씨앗만으로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혜원의 엄마와 아빠는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이별을 했을까?
단아하고 매우 따뜻한 여인.
애틋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가 떠난 한참 후의 시간에도 그 그리움과 보고픔이 진하게 남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란 것에 지배를 받으며 그 시간이란 것으로 인해 절절함도 무덤덤한 무심함으로 바뀌며, 애틋하고 가슴시린 사랑도 희미한 기억으로 남게 할만큼의 능력이 있다.
매일매일 그립고, 매일매일 애닳는 가슴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는 이생을 자신의 명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어쩌면 시간
으로 인해 잊거나 희미하게 하는
망각
이란 것
은 신이 주신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혜원의 엄마가 보여쥬 아릿한 감정
역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잠시 멈춘 감정의 깊이가 무척이나 비현실적이게 아련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다.
어제 오후 내내 내린 비가 꽃샘추위를 불러오는 모양이다.
제법 무거운 창을 흔들어 댄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의례 오늘같이 스산한 밤엔 둘만의 회식을 했다.
치느님을 모셔놓고 딸은 콜라, 나는 쏘맥.
딸 아이에게 아이아빠와 이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의 어린 딸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빠는 엄마한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고,
나는 사랑하기보다 이별하기 좋은 남자라고 대답했었다.
이별할 때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어린 생명들을 잘 보살펴 주었으며, 지금도 책임을 다해 자신의 길과, 자식의 길을 가는데 여념이 없다.
어린 딸이 살아내기에 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어린 혜원의 엄마가 알려준 것은 경쟁의 숨가쁜 나날이나 절망의 상황에서도 끝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부모란 그런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내 최선이 무조건 좋은 결과물을 낳지 못한다 하더라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또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도 삶은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자신들의 엄마와 아빠가 각자의 삶의 길을 가더라도 그것 또한 끝이 아님을 내가 딸에게 알려 주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우리는 어떤 삶의 방식이든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없게 태어났다.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하며, 내일을 생각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의 삶은 그런 것이다.
꿈을 이루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가장 단순하게,
가장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즐김과 감사함.
그것이 어쩌면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저 밥 먹고 살고, 내 식구들과 아프지 않고, 다투지 않고 오손도손 사는 것.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거장하지 않은 삶의 목표여도 썩 괜찮은 것 아닐까란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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