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자꾸만 진한 에스프레쏘처럼 다가온다.
세포 전쟁 책 후기
세포 전쟁
매리언 캔들 지음
이성호/최 돈찬 옮김
비록 면역계의 역할이 일생 동안 변하기는 하지만, 효과적인 면역계는 생명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필요하다.
우리가 질병을 이겨내는 능력은 부모의 유전자로부터 물려받은 잠재능력과 삶의 초기에 면역계가 프로그램된 방식, 그리고 매일매일 면역계가 직면하는 알레르겐의 종류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은 아주 매력적이고 중요한 내용이다.
(중략)
난소에서 난자들은 투명대(zona pellucida)라 불리는 특이한 외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난소에서 난자가 떨어져 나올 때(배란)에도 이 외막은 존재하며 여기에 모체의 난소 세포들이 붙어 있다. 그리고 정자는 이 표피 막 층을 뚫고 들어간다. 그런데 모체의 면역계에서 나와 수정란 주위로 모여든 면역세포들은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외막의 난소 세포들 때문에 수정란을 같은 편으로 받아들여서 공격하지 않는다.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할 때, 투명대와 난소 세포 덩어리들은 모두 제거된다. 모체는 착상 작용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았을 때 거부하는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이 때문에 수정란 주위의 국소 환경은 수정란이 자궁조직 안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거부반응 없이 배아가 자궁벽에 착상할 수 있도록 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거부반응 없이 배아가 자궁벽에 착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단 배아가 안정적으로 자궁에 착상하면, 거부반응은 곧 중지된다.
(중략)
임신 말기에는 모체와 태아 모두 항체를 생성한다. 태아의 항체들은 영양 배엽을 건너 모체로 갈 수 있지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드물게 모체의 세포들이 태아로 들어갈 때조차도 출산 직전까지는 아기의 면역계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3장 생활양식의 소단원, 생명의 시작 중에서 발췌-
그림출처-네이버 검색
난자에 정자가 들어와서 두 쌍의 염색체가 만들어지면서 모체는 원래 가지고 있던 면역반응으로 다른 조직이나, 세포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그 공격 반응을 난소 세포들이 수정란을 촘촘히 둘러싸서 동종으로 인식하도록 위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궁벽에 안전하게 착상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면 난소 세포들은 물러가고 타조직으로 인식하게 해서 수정란 주변에 작은 면역반응들을 만들어서 수정란이 자궁조직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고 안정되게 자리를 잘 잡으면 다시 공격성을 거두어들인다는 내용이 위의 내용이다.
참 감격스러운 내용이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관념적으로 알았다고 하면 이 대목에서는 아주 사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절감했다고나 할까?
이 놀라운 생명의 비밀은 꼭 인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의 생성과 탄생에는 커다란 힘과, 놀라운 신비가 조화가 숨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탄생과 존재는 축하받고, 존중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시답잖은 소설을 쓰기 이전에 준비작업으로 읽으려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의학계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이 책은 안타깝게도 2005년에 만들어졌다.
오래된 감이 많고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보면 수정되어야 할 내용들도 더러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를 말한다. 의학인이나, 전문인이 대상이 아닌, 일반인들이 인체에 대해, 면역반응에 대해서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책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지 꽤 되어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새록새록 기억을 더듬으며 오래된 사진첩의 사진 하나하나의 추억을 되새김하는 느낌으로 기쁘게 읽었다.
아!! 이렇게 새로운 사실도 있었구나.. 아.. 그랬었지... 를 교차하면서 읽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죽어가는 삶은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회는 죽음을 불쾌한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의 신체 내부에서 드물지만 세포 수준의 생명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 대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원제목은 '죽도록 살고 싶다'(dying to live)이다.
서문의 마지막에 나온 글이다.
수없이 세포가 나고 소멸함을 반복하면서 우리의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새롭게 다가온다.
오래된 영화 제목인, '죽어야 사는 여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죽음을 인식하고 삶을 살아갈수록 삶이, 生이 더 반짝반짝 빛이 날 수 있다는 평소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하는 대목이었다.
죽음 멀리 바라보고, 체감하지 못할수록 生은 생기를 잃어가고, 더 이상 설렐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내 몸 안에서는 生과 死가 순환하고 있고, 그것은 신비함이고, 놀라움이다.
우리의 하루하루의 生이 그저 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고, 감사한 일이 아닐는지....
모든 지식은 분야로 나뉘지만 나의 체감도에 따라서 지식은 다르게 해석되고, 삶의 이용도와 활용도가 달라지며 극치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지식이란 것은 내게 그렇게 生에 대해서 더욱 절절하게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림출처 아트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