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산다. 급식소 일을 끝내고 집 앞 공터에서 피는 담배가 윤희의 텅 빈 마음을 대신해 준다. 어느 날 딸, 새봄이가 우편함에서 윤희에게로 온 편지를 읽게 된다.
이후 딸은 경찰인 아빠를 찾아가서 왜 이혼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엄마인 윤희에게도 여러 질문을 한다.
"엄마는 왜 살아? "
편지에 어떤 내용들이 있기에 새봄이는 저런 질문을 했을까? 왜 사냐는 짧은 딸아이의 질문에 윤희는 머리를 말리다 말고 딸을 홱 돌아보며 오늘따라 왜 그러냐며 짜증을 낸다. 아마도 윤희는 당황하는 것 같아 보였다.
윤희는 영화 보는 내내 늘 굳은 표정을 하고 기계적으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중년의 여인이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윤희에게 왜 사냐는 질문은 아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피하고 싶은 질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수없이 그런 질문을 해 왔던 나도 명확한 답을 찾기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다소 저돌적이고, 박력 넘치는 딸의 당돌한 그 질문이 윤희에게, 그리고 나에게 작은 파편처럼 가슴에 와 박혔다. 좀 더 살다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지만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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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는 첫사랑이 있었다. 이루지 못했던, 못다 한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의 여운을 딸인 새봄이가 치밀한 여행 계획을 세워두고 차근차근 정리해 준다. 역시 당돌한 딸, 새봄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윤희에게 전남편이 찾아온다. 여전히 윤희를 잊지 못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윤희의 주변을 맴돌았던 그가 착하고, 사랑 많은 여인을 만나 재혼하게 되었노라고 청첩장을 내밀며 흐느껴 운다.
그제야 부담스러워 남자의 마음을 밀어내기만 했던 그녀가 따뜻하게 그를 안아주며"정말 잘했다"며 그의 아픈 마음을 토닥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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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딸의 대학 입학과 함께 이사를 하고 한식 요리를 배우려고 이력서를 쓰면서 자신의 계획을 딸에게 말하는 윤희는 표정도, 말투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윤희는 첫사랑을 만난 이후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녀에게 그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많은 의문이 든다. 채우지 못한 첫 단추를 채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었을까?
그런 윤희를 보면서 오랫동안 마주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하고, 그 감정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훨씬 가벼워지고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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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가 되었다. 직장에서의 극한의 스트레스로 시작해 나의 깊은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많은 상처들을 마주했던 2020년이었다. 오랫동안 묵혀 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뭐가 뭔지도 모르게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던 것들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갔다.
나 또한 윤희처럼 마주하기 두려웠던 것들을 불러내어 그 감정에 이름들을 붙여 주었고 이후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회복되어 가고 있다.
윤희가 긴장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식당으로 이력서를 내러 들어가던 뒷모습처럼 나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중년이란 시간이 진정한 내 인생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시간이란 걸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랑을 꿈꾸지는 않지만 꿈으로 설렐 줄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지금부터가 진정한 내 삶의 시작이다. 2021년이 밝았다.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힘차게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