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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Apr 08. 2021

아픈 내가 아픈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자살의  일상적인 유혹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화가 시작되고, 죽음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 것이 생이다.

어렸을 때는 지금 그렇게 흔한 이비인후과가 없었고, 알레르기란 병명조차 들어보지 못했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견딜 수 없는 가려움.
가려움은 통증과 비슷한 통각이라고 했던가?
나는 1년에 360일은 고통의 정도만 다를 뿐 이렇다 할 약도 먹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피곤하니 예민해지고, 소심해지고 그러다 우울해지고 툭하면 눈물바람이 불었다.


오랜 직장생활 끝에 정신과에서 선사받은 병명은 진단명에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해내는 어른의 당연한 기능 혹은 가면들을 걷어버렸다.

마치 뒤로 한껏 젖히다 툭 끊어져버린 활시위같이 더 이상 팽팽하게 긴장할 수도 없어져 버렸다.

"선생님... 저는 고장 난 것 같아요."

"저 같아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계신다고 하면 고장 날 것 같아요.  고장 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상담 선생님은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1년 넘게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은 스스로를 벼랑으로 밀어버리기 전까지의 모든 전원을 차단하게 해 주는 차단기 같은 것이다.
과열되어 폭발하거나 증발해 버리기 전에 전원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가지에서 낙화하는 벗꽃. 가지와 꽃의 분리. 누가 먼저 손을 놓아 버린걸까?

상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청소기를 돌리면서 '괜찮다'는 말을 왜 스스로에게는 해 주지 못하는 걸까?
그 말을 왜 나는 꼭 타인에게 들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이토록 사람들을 갈망하고, 의지하는 걸까? 스스로는 설 수 없는 사람인가?

다시 시작된 밀어붙이기.

이렇게 수없이 반복하고, 다시 조금 뒤로 물러나고, 다시 밀어붙이기를 반복한다.
 
 일상이 버겁다.  말할 수 없이 우울하고, 말할 수 없이 불안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아파 보이지 않는다고.
혹은 너무 멀쩡해서 그런 줄 몰랐다고.

아파도 식구들의 밥을 챙기려고 끙끙대며 일어나는 일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에게는 그 일상을 살고 있지만 통증과 불편함, 불안함이 책임과 의무라는 가면 안에서 불안정하게 폭발할 것 같은 핵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해 내는 것이 당연함이며, 그 당연함이 민폐나 주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일이기에 견디는 것이고, 나름의 안전핀 같은 행동수칙으로 스스로만 아는 환기의 시간을 가지며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어른, 사회인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것이다.

일상을 얼마나 잘 소화해 내고, 불편함을 얼마나 편하게 넘길 수 있느냐의 역량에 따라 건강과 병의 경계가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쉽게 말해 안 불편하고,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병증은 정신력으로 그 불편함을 누를 수가 없다.  그 마음속의 언어가 몸으로 비집고 튀어나온다.  
누군가는 숨길 수 없을 만큼 누가 봐도 이상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그 신호를 알아차려 스스로 그 자리를 피해 자신만의 매뉴얼로 그 순간을 환기시킬 수도 있다.


생활, 생존의 지혜는 경험과 시간에 따라 증가한다. 그래서 좋지는 않아도, 견딜만하고, 지낼 만 해지는 날도 생기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언제 좋아지고, 괜찮아질 것인지에 집중하기보다 기대치를 낮추어 오늘 주어진 하루에 다행 감을 가지고, 조금 덜 불편한 지금을 지긋이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삶을 버텨온 , 나만의 지혜이다.

끝없이 나를 쪼아대며 나를 괴롭히던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들에 조금 둔감해 지기로,

언제까지 이 고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절망감에서 나를 믿고 있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려 보기로,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목구멍으로 삼켜낼 때 배고픈 지구의 생명들을 기억해 내고 끝까지 주어진 음식을 삼키기로 한다.

인생의 유의미를 확신해야만 무의미와 불화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늘 무의미의 편에 서게 되는 자신을 돌려세우는 나만의 방법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뭐라고 하든 나는 오늘도 살아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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