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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Feb 10. 2018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완벽한 건강에 대한 환상 버리기


인간의 정신에 '정상'의 개념이 없듯이 우리의 몸에도 '완전한 건강'이란 허구의 개념이다.


인체는 끊임없이 감염과 면역의 기능을 수행하는 유기체일 뿐이다.


좋은 이별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중 발췌


 



12시쯤 자다가 깼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읽다만 책을 편다.

제대로 온 노안 덕에 나는 삼십 여분 정도를 지나야 서서히 글씨가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아 애먹을 때면 슬슬 나이 들어가는 것을 실감하며 마음이 울적해진다.


'이렇게 하나하나 고장 나서 잘 안 보이게 되고, 아프고.. 그러다... 그러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건강이란 과연 무엇일까?

건강과 밀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그 개념이 명확히 서지 않는다.


그러다 내 눈에 걸려온 위의 내용의 글이다.

읽으면서 방문 간호사로 일하면서 만난 어느 여인이 떠올랐다.


참 단아하게 생기고 찬찬한 성격이 그녀.

중증 우울증을 앓던 그녀는 정오가 되도록 일어나기를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12평 남짓의 작은 집에 혼자 살고 있는 그녀의 집은 방문 전날 시간 약속까지 하고 방문해도 늘 갓 눈을 뜬 채로 문을 열어 주었고, 방은 늘 반암 막 커튼이 쳐져 있었다.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세수를 하고 나오면서 마실 것을 쟁반에 내 오며 앉는다.

네 번째 정도의 방문이었던 것 같다.


방문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참 불편하고 어색해서 방문을 거부할 법도 한데 그들은 늘 예약전화에서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그들의 시간을 내어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약은 잘 챙겨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환청이나, 환시는 없는지,

기분상태는 어떤지 등등의 일상적인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한다.


그 날은 많이 힘들다고 했다.

몇 주동안 심한 불면증과 우울감으로 거의 식사를 하지도 못 했고, 외출도, 일상생활도 거의 멈춘 상태라고 했다.

그녀의 장성한 아이가 집에 오가면서부터라고 했다.


자신의 이혼으로 아들은 방황하다 군대를 입대했고 제대한 후 그녀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심경이 많이 복잡해 보였다.

그녀 또한 생활이 어려워 아들의 경제적인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이 그녀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바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장성한 아들인 만큼 본인이 잘 해쳐나갈 수 있기를 응원하고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가능한 범위의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하고 상담을 끝냈다.



평생 함께 길을 가야할지도 모르니 너무 싫어하고 미워하지 마세요. 인정하고 살살 달래가며 같이 지내요.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병증에 대해 많은 불안감이 있다.

그것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날 때는 그 불안감이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질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서 완벽히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하고, 그러다 좌절하기를 반복한다.


자신의 질환을 밀어내고 미워한다.

그래서 정기적인 투약도 거부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질환은 더욱 악화되고

자신을 옭아매고 폭군으로 얼굴을 바꾼다.



그러지 않기 위해 질환을 이해시키고, 폭군으로 바뀌지 않도록 기본적인 수칙들의 중요성에 대해 상담한다.



나는 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공부하고 투약에 대한 부분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가졌을 뿐 그리 전문적인 지식은 없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늘 말한다.

병이라는 것은 몸이 아픈 것과 정신이 아픈 것을 구별하면 안 된다고.


몸이 아픈 것은 사람들이 약 먹으면서 증상 치료하는 것으로 조금은 질환에 대해서 수용하는 면이 많으나 대상자나 그 질환에 대한 타인들은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유독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육체는 하나다.

왜 질환을 질환으로 바라보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아픈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숨겨야 할 일도 아니다.

육체의 만성질환이 날씨나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 경중의 차이를 보이고 그에 따른 치료를 변경하며 질환을 관리하는 것처럼 정신질환 또한 그래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해 준다.


경할 때는 활동도 하고, 조금 사회적인 활동도 고려해 보되 중할 때는 잠깐 쉬 기고 하고, 자신을 추스르면서 질환을 관리해야 한다고...


완전한 건강한 상태는 만성질환에서는 거의 드물고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완벽히 좋은 상태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더욱 자주 좌절하게 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건강에 대해 자신할 수 없으며 건강과 중한 질환 사이에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며 산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위의 글귀처럼 완벽한 건강함이란 있을 수 없다.

어딘가가 아프기도 하고, 그러다 낫기도 하고 다시 반복하면서 나이 들어가고 그러다 만성질환이 하나하나 나의 지병이 되는 것이 어쩌면 수순일지도 모른다.


점점 불편해질 것이고, 점점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어려워질 것이며, 가장 최소한의 활동으로 살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 그 기간을 유보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들을 하지만 결국은 그런 날이 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최대한 하루하루 건강을 위해 운동이나 명상, 건강식품 챙겨 먹기 등의  작은 저축을 하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완벽히 건강해지기'라는 너무 멀어서 암담한 목표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누구나 오랜 지병이 지속되면 경제적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정신과 육체의 질환을 남의 것인 양 멀리서 지켜보는 것은 교만한 인생이다.


나도 저렇게 아플 수 있고, 힘들어질 수 있기에 나는 결코 충고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그들에게 최대한 희망 고문하지 않도록 그들의 질환을 마주 보기를, 다독이며 함께 가기를 권한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충고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시간 나도 많이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그들을 만났다.

그들의 손을 잡기도 했고, 그들의 등을 쓸어내리기도 했으며, 그들의 두 눈을 지그시 마주 보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은 나에게도 큰 위로였고,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도 아픈 시간이었으므로.


건강이든, 경제적이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늘 불면의 밤을 보냈고, 조증과 울증을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그들과 마주하면서 했던 많은 말들은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너무 멀리 보지 말자고.

너무 건강해지려고 욕심내지 말고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제보다 하나가 더 많아졌다면 자신을 대견하게 칭찬하며 하루하루를 버티자고 말했다.


그렇게 나도 그들과 8년이라는 시간을 죽음의 유혹에서 잘 벼텨내왔던 것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

노인이 노인을 방문하여 안부를 물어보는 것.

이 모두 전문의와의 진료와는 또 다른 일상의 치유가 될 수 있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발령받은 부서가 기존의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이 되었지만 그때의 일들은 내 인생에서 참 중요하고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무언가를 주고받습니다. 상대를 향한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향한 말일 때도 있지요. 아픔을 주고받으며 함께 견뎌온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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