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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Apr 06. 2021

내가 낯선 아침

압력솥에 계란을 오랫동안 구웠다. 물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열되어 계란 스스로의 수분을 빼앗겨 또다른 계란의 맛을 느끼게 해 주어 좋아한다.  

깨진 것 먼저 먹을 심산으로 접시에 놓고 보니 왠지...저 속에서 병아리라도 나올 것같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균열이 눈에 들어온다.

오랫만에 책상에 앉아 블루투스 자판을 두드려 보니 낯선 손의 감각이다.  그렇게 익숙했던 키보드가 낯설은 느낌이라니...정말 쉬지를 못했었다.

계란껍질을 까고 보니 익혀진 계란의 오묘한 색깔.  껍질을 까고 나온 병아리처럼, 그리고 계란처럼 나또한 새롭게 삶이 느껴진다.  그저 기계처럼 출근하고, 주어진 업무를 감당하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씻고 잠들고 다시 출근하기를 반복했던 삶에서 내 영혼이 막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기는 하지만...대충 그런 느낌이 든다.  정신이 겨우 드는 느낌?

휴가는 있으나 제대로 휴가를 쓸 수 없었던 시간 속에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하지 않으려 그저 영혼없이 일상을 기계적으로 소화했던 탓이리라.

지금까지 써내려갔던 많은 글들을 이리저리 마음가는대로 읽으면서 '아...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이런 글을 썼던 사람이구나..'를 마음속으로 반복한다.

내가 이랬던 사람이었다라는 자각을 새삼해보는 아침.

삶을 견디면서 시간을 벌고, 견딜만 해지니 반복되는 일상이 덜 불편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렇게 정신이 든다.

그렇게그렇게...봄이 왔고, 나도 좀 견딜만 해졌다.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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