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아이들과 먹을 갈비를 하고 남은 대추가 아까워서 식탁에 앉아 작은 과도로 씨를 꺼내고 얇고 곱게 채를 썰었다. 자주색 뭉게구름 같은 모양이 제법 예쁘다. 끓는 물에 병을 소독하고 엎어 놓고 설탕을 듬뿍 버무리다 냉장고에 있는 배가 생각났다. 맛과 향이 너무 좋은데 시들시들한 녀석이 안타까워 꺼내서 썰었다. 설탕과 계피에 버무려 병에 꾹꾹 눌러 담았다.
전쟁 같은 직장생활 12년.
2-3년을 제외하고는 해를 더 할수록 출근이 지옥 같았고, 어르고 달래 가며 5년을 겨우겨우 넘겼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 이 나간 개밥그릇처럼 이리저리 소용대로 나를 빼고, 박고를 반복하면서 나는 결국 정신도, 몸도 멈춰 버렸다.
잠시 질병휴직 중에 깔끔한 에이프런을 차려입고, 카페 같은 조명의 집안 여기저기를 사뿐사뿐 다니며 살림을 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며칠 동안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 번도 일을 쉴 수가 없었던 나만의 굴레가 너무 가혹해서 목놓아 울었다.
경제적인 책임과 의무라는 것으로도 내 정신과 몸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3개월 휴직을 냈지만 내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사를 하고 집을 정리하고 겨우 정신이 좀 들었다.
밥이 좀 먹고 싶어 졌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에 독기도 많이 희석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복지관 수업도 어느 정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책도 조금 마음에 와닿았고, 마음과 몸의 감각이 조금씩 돌아옴을 느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의 말투, 상황에 떠오르는 감정, 생각들이 분명 나의 것인데 그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지금까지 살아 낸 나의 모습이 왜 이렇게 낯설지?
지금 이런 나는 누구지?
갑자기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무균실의 환자처럼 철저히 외부 자극으로부터 나를 차단한 채 지냈던 그 몇 개월간의 시간이 이렇게 큰 간극을 만들어 낸 걸까?
십 년 넘은 직장동료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분명 다르지만 아주 다른 시대를 사는 듯한 괴리감마저 들었다.
혼란스럽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시간을 통해 나란 사람도 얼마든지 변하는 것이니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들 큰일 날 일은 아닌 것이다. 미래의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여도 말이다.
단지 지금은 그들과 나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는 중이다.
집 앞 공원에서 아침운동을 하고 잠시 밴치에 앉아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빠르게 흐르고 있는, 내게는 다시없을 소중한 지금의 시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싶은 생각이 밀려들었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 명상을 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책을 보고, 잠시 쉰다. 그래도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제한된 시간이기에 더욱 절절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 소중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다시 복귀를 할 것인지, 퇴직을 할 것인지도 사실 정해진 것은 없다. 하지만 마음이 평온하다. 미리 걱정할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회복 중이고,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너무 오랫동안 툴툴거리고, 칭얼대며 살았던 만큼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떠올려야 한다. 지금.
주어진 시간이 다하고 나면 나는 다시 뛰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조급할 건 없다. 오늘처럼 대추를 보고 시작된 작은 소일거리부터 천천히 하루를 잘 꾸려나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