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한 지 5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라 하루하루가 무척 아쉽고, 행복하다. 대신 정해진 지출을 빠듯하게 유지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게 되었다는 상황 빼고는 만족하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빠듯함은 익숙했기에 소중한 두 명의 나의 어린 지인들의 용돈을 매달 송금해 주는 일은 중단하지 않고 있었다. 비록 보잘것 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그 돈조차 그 어린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절실할지 나 또한 비슷한 어린 시절의 가슴 아픈 기억으로 족히 알기에 최대한 지속하고자 마음속의 수많은 생각과 자주 다투게 되었다.
그 다툼은 어이없게도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나의 능력과 상황에 맞지 않는 이 지출에 대해서 교만하고, 어디서 나오는 자만감이냐며 공격했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심란한 마음은 빠른 걸음이 약이다. 찬바람을 가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마음에 귀 기울여 본다.
책임과 지속성에 무게를 두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섣부른 선택이라고 해도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을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을 멈추자고 스스로에게 권고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기로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를 묻고, 상황이 이리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미안하다고 하니 다행히 상황이 좋아져서 괜찮다고, 도움을 주어야 할 분이 아닌데 왜 미안하냐고 하니 눈과 가슴이 촉촉해진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고맙구나...
나에게 평생 행복이란 이름은 희망고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본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저 일하고, 생존하다 소멸하는 것보다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소용과 가치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바뀌고, 쉽게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그 어떤 상황에도 영향받지 않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감정이라고.
무기력을 자주 반복하는 내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조용히 누워있을 때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기억났다. 그이가 했던 행복이란 것에 적합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매우 자주 행복했었을지도....
사진출처-밴드 내가 담은 사진의 희민님
내 안에는 수많은 내가 살고 있다.
적은 가장 가까이 있다고 했나?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에 걸맞게 나를 너무 잘 아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매번 나는 아군인지, 적인지 미처 알기도 전에 맥없이 쓰러진다.
나를 죽이는 것도 나고, 살리는 것도 나다. 병을 주는 자도 나고, 약을 발라주는 것도 나다. 지금까지는 나를 살리는 나보다 죽이는 나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속수무책 당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허겁지겁 도망치거나 그럴 기회조차 없다면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또한 소용없는 짓인 걸 알지만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방법을 달리 해 보기로 했다.
도망치기 전에 일단 그 독설에 대해 인정하고 시간을 번다. 그러면 더 이상 들을 때까지 소리치지는 않으니까. 인정함과 동시에 격동하는 감정의 파도를 더 이상 불러들이지 않기에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못된 그 목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것은 나일 때도 있고, 가끔은 타인일 때도 있고, 나의 가족일 때도 있다. 처음 알게 된 사실 어서 스스로도 적잖이 놀랐다. 적을 알고 보니 이제는 맨날 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아직은 못된 그것의 입을 틀어막을 비책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정체를 알게 된 것만도 다행이고, 더 이상 모르고 당하지는 않게 됨 또한 알게 되어 감사하다.
오랫동안 치러냈던 마음속의 전쟁에서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설령 그것이 내가 아니라고 해도 그 또한 당황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지금의 나로 만족하지만 앞으로는 국물도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