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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Oct 14. 2022

행복에도, 불행에도 매몰되지 않기

어느 유품 정리사의 책을 읽고


힘든 것도 살아있으니 겪는 거고 행복한 것도 살아있어야 겪는 것이다.  인생에 행복만 있을 수 없고 반대로 괴로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취하려 한다.  행복한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서 행복인 줄을 모르고, 괴로움은 원래 삶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원망하고 비관함으로 자신을 파괴한다.


괴로움은 삶에 다달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행복이 우리를 찾아온다.  당연하게 여겨서 모를 뿐이다.


살아있다는 건 축복이고 기적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태어났으므로 이미 나는 선택받은 존재다.

이 책은 즐겨보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다가 초대손님으로 나온 이 책의 작가를 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새별 작가는 젊은 시절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겪고 우연한 기회로 유품 정리사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전 방문간호사로 독거어르신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키도 아담하고 얼굴도 동글동글하니 외모가 사랑스럽고 (외람되지만) 귀엽기도 한 92세의 할머니를 1년 넘게 정기적으로 방문했었다.  할머니는 별다른 지병도 없었고  방문하는 날에는 간소한 살림살이를 하시느라 종종걸음으로 분주하게 나를 맞아주시곤 했다.  할머니는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손자, 손녀와 친척들이 할머니 집에 자주 방문드렸고, 할머니는 늘 나를 포함해 주변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작은 보자기를 가지고 오셨고, 안에는 예쁜 리본이 달린 민트색 크록스 신발이 있었다.  그걸 나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내가 좀 오래 집을 비우게 됐어요.  선생님.  언제 올지 몰라서 평소에 선생님한테 꼭 이걸 드리고 싶었는데 잊어버릴까 봐 미리 챙겨놨어요."


할머니는 92세의 긴 시간 동안 별다른 힘든 일 없이 감사한 평생이었노라고, 자신의 좋은 기운이 담긴 이 물건을 꼭 나에게 주고 싶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할머니의 진심에 감동이 되어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잘 다녀오시라고, 다녀오셔서 또 뵙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지만 할머니는 그곳 친척집에서 조용히 잠들 듯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인생에서 거칠고 험한 큰 산을 만나 헐떡거리던 그 시간의 나에게 할머니는  희망이 되는 분이셨던 것 같다.  나도 이 험한 산을 넘으면 저분처럼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평화의 시간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진출처;지인)

이 책에서 말하 듯, 괴로움과 행복은 인생에서 당연히 밀려오는 파도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몰랐었고, 지금은 알게 된 사실이다.  항상 행복할 수도 없지만, 항상 불행해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란 말처럼 그저 불행과 행복은 교차하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매일을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떨지 않았을 텐데 그때의 자신에게 너무 안타까움이 들었다.  


살아 있음, 삶이란 어떤 목표라기보다 과정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꼭 행복하지 않아도 되고, 내 인생의 목표와 의미가 꼭 유의미할 필요도 없다.  그저 살아내는 삶도 가치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즉 삶은 감수성이 높을수록 내가 살아 있고,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과 불행은 그 자각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작은 구성요소일 뿐인 것이다.


고통과 행복 속에 매몰되지 않는, 그저 지금 이곳에 존재함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 지금의 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과 너무 일치해서 따뜻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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