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 불가피한 이유로 예전의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관계와 소음으로부터 멀어져 지낸 시간이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진공상태까지는 아니어도 외부의 많은 자극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나의 의지와 희망과는 다르게 강박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압박을 주는 생각의 정체는 늘 내 삶을 흔들어 대던 가족이기도 했고, 타인의 삶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나 자신이기도 했다. 내 지금의 상태와 희망과 반하는 내면의 말들이 나를 쉬지 못하게 했고, 자책과 무기력은 더 자주 반복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귀하고, 감사한 지금의 시간에 나를 불편하게 하고, 쉬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소리로부터 나를 지켜내고 싶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나서부터 '나'의 마음에 귀 기울이려 의도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고,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날에서 그날은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전에 삶을 이루는 욕망, 사랑, 병,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무심한 듯 따뜻하게 다독거려 주는 책이었다. 천천히 한 장 한 장 책을 넘길 때마다 스스로를 공격하고 아프게 하는 자가면역질환처럼 자신을 매일매일 찔러댔던 일을 그만두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나를 찔러대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나를 격리하기 위해 단단하게 쥔 마음의 주먹을 풀게 해 주었고 그 후 나를 진심 걱정하는 주변인들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라는 자아의 중심도 중요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결코 철저히 혼자일 수 없고 결국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또한, 수많은 개인의 '나'가 모여 '우리'가 되었고, '우리'여도 결코 '나'는 사라지지 않으며 지금부터는 진정한 '나'가 되어 살아가길 힘껏 응원해 주는 작가의 말에 큰 위로를 얻었다.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인생 전반의 소소하지만 중요한 주제에 대해 얄팍한 위로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조금은 큰 그림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기에 쉽게 어느 한 주제를 골라서 쓰기가 무척이나 어려워 몇 번을 쓰고, 삭제하기를 반복했다. 그만큼 이 책은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보다 긴 호흡으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읽어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살아가고 있지만 삶을 진정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만나는 이들도 부디 힘찬 그의 응원을 받길....
운명의 다채로움은 늘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련이 있다. 만남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깊이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만난 타인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나'라는 이름의 집단 작품이다.
알다시피 자기 본연의 모습이 아닌 상태로 살기를 강요당하거나 스스로 자기 본성을 감추는 사람들은 꽤 많다(가령, 성적 지향이라는 면에서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이 나중에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면(세네카) 세상의 폭풍우로부터 안전한 항구에 들어온 것 같은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자기와의 화해 첫 단계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들려면 일단 내 인생이 신, 교회, 유대교 회당, 이슬람 사원, 마을 공동체, 출신 계급보다는 나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