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빵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빵이 뭐게.
아빵!
대학교 때 했던 농담을 아빠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제 친정에 저녁 식사로 사간 피자 값을 보내주시며 ‘아빵_피자값’이라며 덧붙이신 걸 보면.
아빠는 나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외고 입시에 떨어진 후 아빠는 나를 캐나다에 보냈고 고등학교 진학 후 내가 원하는 진로를 써냈을 때 아빠는 모두 지운 후 아빠가 원하는 나의 진로를 적어 제출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나에게 더 엄하게 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셨다. 그 당시 내가 느끼는 아빠와 나의 사이는 보호자와 딸, 딱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회사를 다니며 아빠의 무게를 참 많이 느꼈다. 한 직장을 30년 넘게 다닌다는 건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우리 가족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아빠에게는 차마 말 못 할 미안한 감정과 함께 서먹한 딸의 애정이 담기곤 했다. 엄마의 타박을 들을 때도 괜히 내가 아빠를 더 챙기려고 했고 그런 아빠를 보며 또 속상하기도 하고.
아마도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의 클라이맥스는 결혼식이었다. 준비를 하며 예비신랑보다 오히려 아빠와 더 자주 부딪혔다. 그럼에도 아빠의 떨리는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들어갈 때 아빠의 한 마디, ‘잘 될 거야.’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순서에서 아빠가 ‘잘 살아.’라고 하는 것 때문에 눈물이 왈칵 났던 건 나만 아는 기억.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내가 연락을 안 하면 ‘잘 지내지? 보고 싶다.’는 말로 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아빠의 연락, 출퇴근길에 아빠와 닮은 뒷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는 나, 이제 우리 부녀 사이는 조금 애틋한 그런 관계인 것 같다. 거리를 두고 나서야 깨닫는 그런 관계.
아빠의 정년 퇴임이 다가온다. 평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보냈던 회사와의 작별이라니. 아빠에게 참 큰 부분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어떤 기분일지 차마 감도 오지 않는다. 그런 아빠에게 좀 더 살가운 딸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괜히 아침부터 아빠 보고 싶다. 어제 보고 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