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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un 08. 2019

따르게 만드는 사람, 리더

퇴사 후 비로소 보이는 것

너는 이 일에 소질이 있어.
거기에 열정도 있고.

퇴사를 이야기했을 때 회사의 가장 윗분에게 들었던 말. 사실 이 말은 면접부터 나의 연봉 협상, 중간 평가 등에서 항상 나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믿고 일했었고.


일을 왜 대충해?
넌 이 일에 소질이 없는데 왜 하고 싶어?
이직 자리 알아봐줄까?

아직도 이 말들이 또렷히 기억나는 걸 보면 퇴사를 결정한 건 나를 위해 잘 한 일이었다. 잠자는 시간만 빼면 회사에 있는데 같은 프로젝트로 1분 1초도 떨어질 일이 없는 윗 사람에게 매 순간 혼나며, ‘오늘은 또 어떤 일로 혼날까.’라는 생각으로 아침마다 일어나는 건 생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회사로 출근하는 건 나 자신을 헤칠 뿐더러 이러다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이 위태로웠다.


그렇다고 해도 퇴사가 절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아무리 미워도 내 첫 직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 그런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윗 사람에 대한 피드백을 얘기했던 나는 아무리 고민해봐도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 나오는 수밖엔.


퇴사 후 아픈 기억을 바로 지울 순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 한들 질량 보존의 법칙에 의해 더 심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주위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난 마음을 회복하고 좀더 단단히 만들 시간이 필요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보다 잘 아물고 있는 듯했다. 벌써 손이 근질거리는 게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이 있는 사람이 힘들었지 일이 힘들어 퇴사를 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잘 견디고 있다던 느낌은 신기루였고, 아직은 욕심이었나보다. 그 사람의 언행이 제 3자에게서 들리는 순간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고 오늘 하루 종일 그 기분에 사로잡혀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낯선 사람이 나를 다그치자 온 정신이 그 쪽에 쏠려 별 것도 아닌데 계속 그 잔상이 머릿 속에 남아있는 기분.


이전 직장을 떠나 제 3자가 되고서야 리더라는 무거운 직책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연차가 쌓인다고 자연스레 되는 리더가 아니라 기본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 리더십을 발현할 수 있도록 아랫 사람들이 받쳐줘야 하는 게 아니라 믿고 따를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리더라는 것. 그리고 적어도 업무 중 잘못이 있더라도 윗 사람이 날 믿어 줄 거라는 신뢰가 있어야 아랫 사람들도 그 사람을 리더로 인정하고 따를 수 있다는 것까지.


덧붙이자면 본인은 평가를 해야하는 사람이니까 라는 마인드와 모든 과정과 결과물로 아랫 사람들을 평가하겠다는 말이나 드러나게 자주 하는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필요할까? 물론 연차에 따라 업무가 다를 수 있고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 있겠지만, 평가는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 아랫 사람도 윗 사람과 회사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걸. 하긴 나도 회사에선 불평 불만 가득한 사람이었고, 멀리서 바라보니 나 역시도 그런 자질이 없었는 걸.


회사를 떠난 뒤에야 깨닫는 리더라는 이름 뒤 무거운 책임감. 또 다른 곳에 가서 내가 연차를 쌓으면 나 역시 리더가 되어야 하는 걸까. 리더십이 될 자질은 배우면 배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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