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생활이 얼마 안 남았다. 이제 완전히 적응해서 별로 색다를 게 없는 하루하루다. 처음 2년은 처음 접해보는 일들에 정신을 못 차렸다면 이제는 여유가 넘친다. 그러다 보니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은 특별한 도전을 해 보고 싶어졌다. 한국에 돌아가면 시도하기 힘든 일이 뭐가 있을까? 얼마 전엔 반짝이 치마와 나시티를 입었다. 대학생 때도 입어보지 못한 옷을 입고 학교 파티에 참석했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별거 없다는 걸.
모두가 너무나 화려해서 내가 보이지도 않았고 내가 뭘 입던 남은 별로 관심도 없어했다. 이렇게 별거 아닌걸 어렸을 땐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남들 다 예쁘게 화려하게 입는 20대 때 가리고 다니기 바빴다. 지나간 일 후회해서 무엇하냐지만 너무 수수하게만 하고 다닌 건 좀 아쉽다. 아무튼 이번에 반짝이 치마를 입고는 더 이상 화려하게 입어보고 싶다는 미련은 없어졌다.
다음으론 인도 전통의상에 도전했다. 말레이시아는 인도 축제인 디파발리를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로 생각한다. 덕분에 학교에서도 디파발리를 축하하며 아이들이 인도전통의상을 입고 등교를 하도록 적극 권한다. 작년에 몇몇 학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인도전통의상을 입고 와서 행사를 즐기는 걸 봤다. 한두 명은 심지어 헤나도 그렸었다. 그게 어찌나 기억에 남던지 올 해는 꼭 해보리라 다짐했었다.
디파발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이제 헤나도 받고 옷도 사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쯤 일본인 친구와 약속이 생겼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친구와 인도거리에 가서 헤나를 받는다면 엄청 기억에 남겠는데!
그래서 굉장히 두근거리며 같이 가자고 했고 같이 갔다!!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인 친구와 영어를 쓰며 인도거리를 걸어 다니다니.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한 거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날 나는 최대한 튀지 않는 인도옷을 사고 손 등에만 헤나를 받았다. 그리고 학교 행사날 사진만 한 두 장 찍고 조용히 집으로 갔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더 화려하게 입고 더 적극적으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면 좋았겠지만 어디 사람 성격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한 거 같아 나 자신을 칭찬 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 이곳에서 못해본 게 많다. 이슬람 사원도 못 가봤고, 시티버스도 못 타봤고 맛집도 별로 못 가봤다. 한국 가면 복직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이곳에 다시 오기가 힘들 거고 안 해본 것들이 정말 아쉬울거다. 가족들과도 더 다양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다 잊어버려서 사진만 남겠지만 남는 건 사진이라 했다. 사진 잔뜩 찍어서 두고두고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