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지나가는 듯한 말에 뜨끔하고 말았다. 애가 둘 있는 엄마들은 아마 알 거다. 둘째의 스케줄은 첫째를 따라간다는 걸. 둘째는 거의 매번 누나의 여자친구들하고만 놀았다. 첫째의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학교 엄마들하고 훨씬 친하게 지냈고, 그 엄마들은 대부분 첫째의 친구 엄마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둘째의 유치원은 엄마들이 방문할 필요가 없다 보니 다른 엄마를 만날 수가 없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둘째가 누나 친구들이랑 잘 지냈다. 얌전히 앉아서 사부작사부작 잘 노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도 같은 남자아이랑 놀고 싶어 한다. 고작 4살이면서 성별을 나누다니 웃기지만 이제는 둘째도 베스트 프렌드와의 사적인 만남을 갖게 해줘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 바뀐다는 말처럼 귀염둥이 둘째도 요 근래 많이 달라졌다.
너무 얌전해서 고민을 하던 게 엊그제인데 갑자기 장난꾸러기가 되었다. 다들 둘째가 순해서 편하겠다 좋겠다 했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얌전해서 학교에 가면 치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키즈카페에서도 뛰어다니는 다른 남자애들을 쳐다만 보고 조금이라도 높아 보이는 곳에는 올라가지도 않았다. 심지어 다른 남자애들은 모두 공만 보면 달려드는데 둘째는 관심도 없다는 듯 앉아있었다. '한국 가서 태권도를 시키면 좀 씩씩해 질까?'같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목소리가 커졌다. 원래도 말은 많았고 애교도 많긴 했지만 뭔가 목소리가 우렁차졌다. 요즘 왜 이렇게 귀가 아프지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애가 계속 뛰어다니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뭔가 힘이 남아도는 모습이랄까? 심지어 "펀치펀치"라는 단어를 외치며 달렸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고 있을 때쯤, 둘째 등원버스를 태우던 어느 날, 한 살 많은 씩씩한 형아가 나를 보며 "펀치펀치"를 외치는 걸 보았다.
아마도 내가 아는 이모여서 장난을 치는 거였을 텐데, 아이가 보여주는 자세가 딱 우리 둘째가 하는 손동작이었다.
상상도 못 했다. 왜냐면 예전에 뛰어다니는 걸 쳐다만 봤던 그 형아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씩씩한 형아를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았는데 속으로는 부러웠던 거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요새 이 형아의 이름을 말하는 빈도가 엄청 늘었다. 유치원에서 같은 반도 아닌데 어떻게 친하게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형아의 씩씩함을 닮고 싶어 하는 거 같아 다행이다. 이제는 펀치펀치라는 단어는 쓰지 않고 이모들 앞에서 신나게 헐크 흉내를 내고 있다. 그 수줍음 많던 어린이가 참 신기하게도 바뀌었다.
많이 남자애다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애교도 많고 눈치도 빠른 사랑둥이다. 잠자기 전에 늘 "오늘 재밌었어"라고 말해주고 내가 조금만 화난 거 같아도 활짝 웃으며 내 기분을 달래주려 하고 그걸로 안될 거 같을 땐 "엄마 좋아!!"를 외치며 나한테 안긴다. 덕분에 무서운 엄마로 변신했다가도 금방 돌아온다. 매일 밤 씩 웃으며 "오늘 재밌었어!!"를 외치는 어린이가 있는데 어떻게 기분이 안 좋게 잘 수가 있을까?
애교가 많지 않은 첫째 딸은 가끔 둘째의 행동을 부러워하는 거 같다. 그래서 꼭 안아주고 사랑한다 해주면 둘째는 고새를 못 참고 나를 자기 쪽으로 돌린 다음 두 팔로 나를 한껏 안아준다. 촉촉한 작은 손이 내 얼굴과 목을 꽉 끌어안으면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그럼 그 모습을 본 첫째는 용기를 내서 나를 꼭 안는다. 기분이 안 좋던 날에도 이 시간 덕분에 행복하게 잘 수 있다. 아이들은 어떤 성격이건 참 예쁘다.
다음 주 일요일에 그렇게 좋아하는 형과의 키즈카페 플레이데이트를 약속했다. 애가 얼마나 좋아할지 눈앞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