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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Jan 22. 2024

몰도바 할머니의 잼을 먹어봤나요?

"여보 나 몰도바 엄마네 집 빵 또 먹고 싶어.. 그 집 잼도 진짜 맛있다?"


말레이시아 와서 먹었던 빵 중에 제일 맛있던 건 동네 빵집도 아니고 유명 빵집 빵도 아닌 옆동 사는 몰도바 엄마가 만든 빵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 거다 '달지 않고 맛있는 맛'.

나는 아침에 브런치를 맛나게 먹어도 집에 오면 라면을 끓여 먹는 옛날사람이라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그녀의 빵은 달랐다. 매일 외식만 하다가 집밥을 먹었을 때의 그 감동이랄까?

이곳에서 파는 빵은 너무 달아서 집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폭신폭신한 빵부터 크레페까지 한 상을 멋지게 차려주었다.

집에서 크레페를 이렇게 얇고 쫀득쫀득하게 만들 수 있는 거구나 감탄하면서 옆에 놓인 체리잼을 조금 발라먹고는 충격을 받았다.


'뭐야? 왜 잼이 이렇게 맛있지!! '

단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잼도 좋아하지 않은데 이건 정말 쫀득쫀득 적당히 달고 깨끗한 맛이 났다.

영어로 내가 아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너는 어쩜 이렇게 요리를 잘하냐? 잼은 어디서 샀냐라고 물어봤다. 잼은... 몰도바에서 건너온 그녀의 친정엄마표 체리잼이었다.

그렇다면 친정엄마표 김치 같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잘 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더 흐뭇하게 식사를 했다.  


그날부터 그 빵이랑 잼이 너무 먹고 싶었다. 특히 그 쫀득한 체리잼!

남편한테 그 빵이 너무 맛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또 초대받을 방법을 생각했다.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체리잼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는 남편의 표정이 웃겼다. '대체 왜 저래? 심심해? '라고 물어보는 듯했다.

만약에 친한 한국언니였으면 솔직하게 말하고 자주 먹으러 갔을 텐데... 내 영어가 부족하니 연락하기가 미안했다. 나는 그녀와 있는 시간이 재밌고 편한데 나만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여기 와서 종종 드는 생각 때문에도 망설였다.

다시 못 볼 사람과 친해져도 되는 걸까?

나는 쉽게 사람에게 정을 주지는 않지만 이 사람이 좋아졌다 싶으면 내가 먼저 연락도하고 밥도 먹으며 인연을 이어나가려 노력한다. 그런데 외국 친구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괜히 다시 볼 수없어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까? 그새 많이 친해진 일본인 친구를 만날 때면 나중에 못 보겠구나 싶어서 벌써부터 마음이 이상하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먼저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하던 차 꽤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가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은 선물을 건네주며 우리가 언젠가 만날 수도 있다. 일본에 가게 되면 연락하겠다 같은 말을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 사람일을 모른다. 일본을 갈 수 있다면 몰도바라고 못 갈 이유는 없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해외에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주재원 남편 덕에 3년이나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는데 유럽이라고 못 갈까? 60살이 되어서라도 만날 수 있는 거잖아?


특히 요즘 인스타로 친한 사람들의 근황을 보며 멀리 있어도 계속 연락하는 기분을 느끼던 차였다. 인스타도 있고 왓츠앱도 있고 하다못해 메일이라도 주고받으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내일은 꼭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해야지, 더 친해져야지 그래서 잼 레시피도 물어보고 빵도 먹으러 가고 떡볶이도 사주고 해야겠다 다짐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 하원길에 그녀를 만났다.

나를 만난 그녀는 줄게 있으니 잠깐만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말을 했다.

'몰도바에 다녀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나한테 잼을 주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잼인가? '같은 생각을 하며 기다렸다.


정말 잼이었다.

종이백 안에는 잼 2종류와 스낵이 잔뜩 들어있었다.

친정엄마가 만든 거라며 남동생과 나만 준다는 이 잼에는 루마니아어로 잼이라고 적혀있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만든 소중한 음식을 나눠준다는 게 정말 고마웠고 나만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게 아니구나 싶어서 안심도 됐다. 그리고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몰도바 엄마에게 루마니아어로 쓰인 잼을 선물로 받다니.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하며 안 그래도 먹고 싶었다고 어머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친정엄마에게 물어봐서 레시피를 알려주겠다는 그녀에게 이때다 싶어 크레페 만드는 법도 알려달라고 했다.

진짜 궁금하기도 하고 이러면서 더 친해지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진짜 맛있다. 생각하니까 또 먹고 싶다.


조금 있으면 설이다. 설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을 한다는 걸 알려주며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하려고 한다.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감동을 줄 차례니까 잘 생각해 보고 선물을 해야겠다.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으니.. 이번엔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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