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갑자기 장문의 이야기를 써서 나에게 가져왔다. 자신감이 가득하면서도 부끄러운 듯 한 표정으로 가져온 이야기가 처음에는 읽히지 않았다. 왜냐면 주인공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빤두 젠이"가 뭐야?
"방구쟁이라고 쓴 거야~"
아하 방구쟁이라는 걸 알자마자 맞춤법이 틀린 단어들도 술술 읽혔다. 내용은 방귀를 뀌면서 날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방구쟁이가 여행을 떠났는데 물건을 챙기고 가지 않아서 엄마가 걱정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방구쟁이를 찾기 위해 엄마가 고민을 하다 냄새를 맡기로 결정한 부분에서 빵 터졌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이 쓴 이야기 치고 아주 잘 썼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맞춤법이야기는 하지도 않았고 폭풍 같은 칭찬만 해주었다.
별거 아닌 글에 이렇게 기뻐한 건 그동안 첫째가 글을 전혀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래 여자아이들은 심심할 때마다 글을 잘도 쓰던데 우리 첫째는 일기가 매번 두줄을 넘기지 못했다.
그 두줄 초자 '오늘 재밌었다. 엄마랑 어디를 놀러 갔다'처럼 매번 똑같은 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에 갓 들어간 아이겠지만 국제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곧 2학년이 된다.
물론 학교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니 한글이 더딘 건 맞지만 한글 쓰기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걱정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볼 때마다 영어 글쓰기가 너무 느려서 집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했기에 첫째의 글쓰기 자체에 걱정이 많았다.
첫째는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정말 정말 좋아하는 평범한 1학년 여자아이다. 그리고 읽는 거에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혼자서 책 읽는 시간을 꾸준히 가지는데 가끔 확인해 보면 이해를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쓰는 게 굉장히 느렸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는 거 같았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글을 써야 하는데 시작을 못해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첫째한테 "빨리 써라", "아무거나 일단 써라", "어렵게 쓸 필요도 없다" 등등의 말을 하며 닦달했다. 그러다 어차피 다 할 건데 그냥 좀 기다리자는 마음이 들었다. 애한테 뭔가를 하라고 계속 시키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한테 글 쓰라고 강요하는 게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어찌할 줄 모르고 힘들어하는 걸 보는 건 정말 괴롭다.
일단 마음을 편하게 먹고 담임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조금씩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첫째의 담임선생님은 첫째의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다면서 짧은 글을 읽고 그 부분을 요약해 볼 수 있도록 지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이 좋았던 걸까? 그냥 시간이 지나서 아이가 달라진 걸까?
같이 공부한 지 20일 만에 장문의 이야기를 갑자기 썼다. 심지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첫째의 담임선생님은 글쓰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 학교에서도 무척 많은 글쓰기를 한다고 들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꾸준히 글쓰기를 했고 집에서도 연습을 하니 글을 쓴다는 것에 두려움이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영어로도 책을 만들어왔다. 이번에는 마법 옷을 입은 유니콘 이야기였다. 한글과는 다르게 스펠링이 틀린 단어는 유추해 낼 수가 없어서 아이에게 많은 부분을 읽어달라고 해야 했지만 이것도 내용이 좋았다.
그동안 첫 페이지도 못 채우고 버리기만 해서 선생님한테 제출 한번 못하더니 이번엔 8페이지나 되는 책을 만들다니 정말 기특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 겨우 한글을 시작했고 글쓰기의 재밌음을 서른 넘어서 알았으면서 애한테는 왜 이리 바라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육아에 있어서 '기다리면 다 한다'는 말은 진리다. 정말 기다리면 다 한다. 어느 누구도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잘하지 않았다. 모든 아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 마음을 잊지 말고 첫째 건 둘째 건 좀 차분히 기다리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언제쯤이면 여유 넘치는 사랑 가득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