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리 May 28. 2024

이번엔 강남스타일이 남았네

와카와카~ 도 잊지 말자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집을 떠나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게 설레기는 하지만 그만큼 불편함도 컸다. 아마도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너무 바쁘신 탓에 가족여행을 거의 다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 거 같다. 남들 다 여행 가는 주말과 명절은 부모님에겐 절대 쉴 수 없는 날이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운전도 못하셨으니 먼 곳을 간다는 게 엄청 부담스럽기도 하셨을 거다.

대신 우리 가족은 금요일마다 VJ특공대를 보았다. 거의 매주 축제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나왔는데 그게 나한테는 큰 영향을 주었던지 아이를 낳고 나니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축제를 가봐야 될 것만 같았다.


나는 부모님과는 다르게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주말과 연휴면 놀러 다닐 계획을 세우는 평범한 부모가 되어 가까이로 멀리로 나들이를 가곤 한다. 여행을 가는 가족의 모습은 아직도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인다. 꼭 드라마 속에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여행이 정말 좋은데 아주 조금 불편했다. 집 밖을 떠나는 큰 수고를 하니 뭐라도 특별한 걸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예전엔 이 특별함에 심하게 집착했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누그러뜨린 건 남편이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여행 때마다 시간에 쫓겨서 아이들을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일본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첫 해외여행이라 초조하게 계속 관광을 하려고 했다. 그게 너무 힘들었는데도 쉬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의 일방적인 요구에 인내심 있게 잘 따라다니던 남편은 밤거리를 산책하자며 나를 이끌었다. 손을 잡고 어두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내 마음이 좀 차분해졌을 때 남편은 이렇게 천천히 걷기만 해도 좋은 거라고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할 필욘 없는 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하던 때 남편이 어른답게 보였다. 솔직히 다른 일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그 밤거리, 그 말, 그 순간의 차분해진 내 마음만 생각이 난다. 그땐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냥 힘들고 귀찮아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날 이후론 드러나게 초조해하거나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는 않았다. 특히 아이를 낳고는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맞춰야 하다 보니 여행을 간다는 것의 신기함 따위에 감정이 고조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을 위해 떠난 거니 기억에 남을 특별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만 했다. 그렇다 나는 이 '특별함'에 아직도 큰 집착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엄청나게 신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까지 왔는데 더 재밌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애들이 어려서 기억도 잘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그런데 얼마 전 여행이 정말로 좋아졌다. 우리 집에서 레고랜드까지는 차로 거진 4시간이 걸린다. 쉽게 갈만한 거리가 아니지만 말레이시아 생활이 6개월도 안 남았으니 큰마음먹고 1박 2일로 다녀왔다.  첫째 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겨우 2시간을 놀았고 다음날도 엄청난 비와 갑자기 오르는 둘째의 열 때문에 놀이기구 근처에도 못 갔다. 결국 우리 가족은 7시간을 거리에서 보내고 고작 2시간을 레고랜드에서 놀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정말 아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애들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놀지도 못하다니.


막상 아이들은 기분이 좋았다. 놀이기구도 타봤고 열은 내렸고 손엔 큰 레고 장난감이 들려있으니 아주 만족한 듯싶었다. 덕분에 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신나는 노래들을 랜덤으로 들으며 내 마음을 달랬다. 우연히 나온 샤키라의 와카와카 음악을 들은 첫째가 학교에서 춤을 배웠다며 댄스를 보여줬다. 그걸 보고 한껏 웃고 있는데 둘째가 방금 들은 '강남스타일'을 또 듣고 싶다는 거다. 강남스타일을 정확히 몰라서 안나스타이라고 물어보는 둘째를 보며 엄청 놀랐다. 이 많고 많은 노래 중 '강남스타일'을 찍다니! 세계인이 이 노래를 사랑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강남스타일과 와카와카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정말 정말 귀여웠다. 가사도 모르고 발음도 잘 못하면서 "강남스타일!!"을 외치는 둘째와 반응이 좋자 카시트에서도 열심히 춤추는 첫째를 보며 이래서 여행 가는구나 생각했다. 별거 안 했어도 그냥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재밌었다면 충분하구나. 아무것도 못했고 남편이 고생만 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 남편도 재밌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랑 같은 걸 느꼈나 보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라더니 이제는 어떤 곳을 가도 만족스러울 거 같다. 아이들이 다 크기 전에 많은 곳을 보며 많은 경험을 해 보고 싶다. 물론 아주 편한 마음으로.


작가의 이전글 다이어트를 했더니 요리가 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