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첫째는 도그맨이라는 만화책에 빠져있다. 덕분에 어딜 데리고 다니던 도그맨만 있으면 심심해하지 않아서 편하다. 처음엔 좋았다. 영어책을 한글책보다 어려워해서 뭐라도 읽어라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읽으니까 왜 저것만 읽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편은 옆에서 그저 잘됐다며 천하태평이었다. 남편이 너무 천하태평이니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결국 한 소리했다.
나쁘게 말하고 싶진 않아서 아주 돌아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만화책도 좋지만 줄글을 읽어야지~"
"엄마도 만화책 좋아해 그런데 만화책이 주는 즐거움과 책이 주는 즐거움이 달라~"
옆에서 비웃는 남편의 표정을 본 거 같았다.
사실 나는 만화를 너무 사랑한다. 나의 만화 사랑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그때는 동네마다 만화책방이 있었다. 이중책장을 빽빽하게 채운 만화책들을 고르면서 정말 기뻤다.
어쩜 그렇게 좁은 공간에 그 많은 만화책이 있을 수 있었을까.
로맨스, 스포츠, 학원물, 추리 등 다양한 종류의 만화를 봤다. 신간이 들어오면 누가 먼저 빌릴세라 부리나케 뛰어갔다. 인기 있는 만화책은 경쟁자가 많아서 한 발 늦으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정말 너무 싫었다.
가방 가득히 만화책을 빌린 날도 많았다. 용돈이 허락하는 한 마음껏 빌렸다.
한 권 한 권을 보물처럼 소중히 대했다. 휘리릭 읽는 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단어라도 놓칠세라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이 중 '봉신연의'는 내가 가장 사랑했고 지금도 늘 생각하는 만화다.
나에게 사랑, 우정, 용기, 믿음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태공망을 보면 두근거렸고 빌런이었던 달기가 지구와 하나가 되기 위해 파스스 사라지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연예인은 잘 알지도 못했지만 봉신연의는 팬카페도 가입했다. 그땐 정말 진심이었다.
내가 만화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했다면 더 좋았을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늘 환상과 상상의 세계가 내 옆에 있어 외롭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 시절이 무난하게 넘어간 건 이 덕분이다.
힘들다고 느낄 때면 자연스럽게 만화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며 그 시간을 지나가곤 했다.
이뿐만 아니다. 공부에도 도움이 됐다.
역사 배경의 만화책들 덕분에 고대이집트, 히타이트. 고대 중국왕조 등등이 쉽게 받아들여져서 세계사가 재밌었다.
심지어 책은 손에 꼽을 만큼 읽었어도 논술전형으로 대학을 갔고 지금도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내가 읽은 그 수많은 만화책들이 분명히 도움이 된 걸 거다.
이제는 더 이상 만화책을 읽진 않지만 이 재미를 포기한 게 아니다. 웹툰의 세계에 발을 들여 더 편하게 즐기고 있을 뿐이다. 웹툰을 보며 울고 웃는 날이 적지 않다. 여전히 나는 만화를 사랑한다.
이런 나임에도 나의 아이는 책을 아주 많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남편은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니 나의 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사람들에게 아이가 만화책만 봐도 괜찮다고 할 거라고 호언장담 했었는데 그렇게는 잘 안된다.
첫 번째 육아휴직을 했을 때 처음으로 제대로 책이란 걸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걸.
글로만 이루어진 책이 내 안에서 무한한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그렇다고 만화를 보면 안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만화가 얼마나 재밌는데 그 재미도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