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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Jul 16. 2021

식기세척기와 세탁기는 나의 소울메이트

없어봐야 소중한 걸 알고 남들이 좋다 하면 좋긴 한 거다

"어우.. 싫다.. "

건강비결에 관한 기사를 보자마자 내가 내뱉은 말이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어느 여교수님의 건강비결이 바로 집안일을 직접 한다는 것인데 빨래도 직접 한다는 부분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래서 끝까지 읽지도 못했으니 다른 건강비결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집안일이 너무나 재미가 없다.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집안일은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빨리 후딱 해치우고 말아야 할 존재일 뿐이다.

그중 제일 재미없는 게 설거지다. 밥하는 것도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만들어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으면 뿌듯함이라도 있지 설거지는 그릇이 깨끗하다고 보람차지도 않다.

더구나 내가 너무 꼼꼼히 하는 건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다리도 아프고 쉬고만 싶다.


첫째 아이가 두 돌쯤 되고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남편에게 화가 나는 게 설거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남편과 나의 집안일은 내가 부엌일, 남편이 청소 나머지는 함께 이 정도로 나뉘어 있어서 거의 반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설거지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내가 집안일을 훨씬 많이 한다고 느꼈던 거다.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랑 놀고 있는 남편을 보면 "나도 같이 일하는데 왜 내가 집안일을 더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사실 남편은 평일 저녁을 먹고 오고 나는 그저 애와 내가 먹은 것만 치우면 되는 정도인데도 밥 하면서 나온 수많은 설거지 거리에 치여서 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어떻게든 설거지 거리를 줄여보려 반찬은 사 먹기, 밥 하면서 미리미리 큰 설거지는 해두기. 그릇을 최대한 적게 쓰기 등등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요리를 잘 못해서 이것저것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설거지하는 시간이 그렇게 줄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기세척기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그렇게 넓지가 않아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부럽게 듣기만 했다.


"전셋집에 식기세척기가 없어서 내 돈 주고 달았어"

"6인 용도 작아서 12인용을 샀어"

"아기 젖병 소독도 된다"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나도 언젠가는 꼭 우리 집 부엌에 넣어두고 말겠다!" 다짐을 했었다.

이 다짐은 말레이시아에 오면서 이루어졌다. 결혼생활 5년 만에

남편이 집을 알아보면서 꼭 필요한 옵션이 있으면 말해보라 할 때 정말 0.5초 만에 식기세척기라고 소리 질렀다. 말하면서 얼마나 기쁘던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기뻤다.


당연히 집에 오자마자 확인한 것도 식기세척기다. 이렇게 기다렸는데도 처음 2주간은 어색함과 3시간 50분이라는 긴 시간 때문에 직접 설거지를 했다. 사용시간이 너무 길어서 설거지 거리가 조금씩 있으면 그런 것들은 내가 직접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점점 사용하는 횟수가 늘더니 지금은 점심, 저녁으로 사용 중이다.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차곡차곡 모아뒀다 한번 사용하고, 저녁때까지 잘 모아뒀다 한번 더 사용한다.

처음엔 이렇게 모아두는 게 안되고 바로바로 씻으려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차곡차곡 잘 쌓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사실 식기세척기가 나의 꿈의 가전제품이었어도 사람들의 말이 완전히 와닫는건 아니었다. 특히 4인 가족에게 6인용이 작다는 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다른 사람이 경험해보고 하는 말은 일단 듣고 봐야 한다는 거를 말이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큰 거였으면 좋겠다 싶다. 그릇을 아무리 차곡차곡 넣어도 자리가 부족하거나 냄비를 씻을 때면 싱크대 아래가 전부 식기세척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할 정도다.

그릇을 이것저것 꺼내 쓰는 거에 대한 부담감도 없다. 이렇게 좋은 걸 이제야 써보다니!

점심만 먹어도 저렇게나 쌓인다


식기세척기가 나의 새로운 소울메이트라면 세탁기는 이제야 존재를 느낀 소울메이트라고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 입국하면서 14일간 호텔에서 격리할 때 그 무엇보다 절실했던 게 세탁기였다.

도착 첫날 땀과 둘째 아이의 토에 더러워진 옷들을 새벽 4시까지 빨고 이곳저곳에 널어두면서 세탁기야말로 여성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킨 일등공신이 맞다 싶었다.


다음날부터 빨래 거리를 안 만들려는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애들이 먹다가 뭐 흘릴까 봐 옆에 딱 붙어서 먹이고 조금 꼬질꼬질한 거는 그냥 눈감고 넘어가고 나는 진짜 깨끗하게 입으려고 얼마나 조심조심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 옷을 아침, 저녁으로 갈아입히고 수건도 잘 안 줘서 내가 가져간 수건을 빨아 쓰느라 빨래 거리가 한 아름이었다. 매일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히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하면서 내가 수없이 한 생각은 그저 세탁기가 있으면 좋겠다였다. 가끔은 세탁기가 없던 시절 겨울에 냇가에서 빨래하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은 생각도 했다. 다들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없어봐야 소중함을 안다더니 예전에는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 세탁기에 대해 이렇게 고맙게 느끼고 있다.

덕분에 한국에서 쓰던 세탁기보다 여기서 사용하는 게 훨씬 작더라도 전혀 불만 가지지 않고 잘 사용 중이다.

깨끗해진 빨래를 볼 때면 세탁기가 꼭 살아있는 사람처럼 너무나 기특해서 이뻐 죽겠다.

작아도 괜찮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는 요즘 가전제품이 하나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건강을 위해서 직접 집안일하는 건 애들 다 크고 고려해봐야겠다.

지금은 잘 쓰면서 도움을 받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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