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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립 Sep 04. 2017

가을 예습/동링산 산행 후기!

가을 예습 등산!

그렇게 무덥던 더위도 세월 앞에 항복 했다. 항상 절기는 계절보다 빠르게 오는 것 같다. 입추는 가을을 열기 위해 더운 날 선봉장처럼 용감하게 나섰다. 이뿐만 아니라 입춘,입하,입동 모두가 자기의 세를 확장하기 위해 날씨보다 먼저 와서 자리 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이미 알아 차린다. 계절의 첫 절기 후 보름 정도 지난, 다음 절기에 새로운 날씨가 서서히 찾아 온다는 것을!

입추도 처서도 지났다. 그리고 백로를 5일 남겨 놓은 9월2일(음력 칠월스무이튿날) 산행을 떠난다.들머리는 동링산 관음전이다. 정상에 오르는 입구는 적어도 4~5개나 된다. 그 중 작년 7월에 오른 이 코스는 양쪽을 훤하게 볼 수 있는 능선을 타기에 시야가 편안하다. 지난해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 후 멋지게 펼쳐진 구름을 보며 감탄에 젖은 등산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만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소나기도 오지 않고 뿌연 안개와 매연이 하늘을 덮은 시간에 출발 했으니!

차에서 내리니 해발 1천3백미터라 가을이 먼저 와있다. 제법 잘 난 등산 길을 따라 한발자국씩 옮기니 정면에는 이정표 같은 소나무 하나가 한쪽 팔만 파랗게 내밀고 있다. 제법 수령이 되어 보이고 1년 전과 별 차이 없는 크기로 사방을 경계하며 언덕 위에서 외롭다. 인간세상의 정상자리도 다를 바 없이 홀로 고독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리더십으로 조화를 이루어 낸다면 무엇보다 빛나고 영광된 자리다. 나무 한 그루로 인해 잠시 외출 나가버린 자연에 대한 감성을 되돌리고 발길을 따라 능선을 오른다.

높아질수록 넓어지는 시야에는 시링산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발돋움 하기 시작한다. 한편 왼쪽에 선 자작나무는 아직 푸른 빛이고 혹 가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잎이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전체는 여름의 정열을 잃어 가고 있다. 이곳의 경치는 가을 절기 여섯개 (입추,처서,백로,추분,한로,상강) 중 백로에 가깝다.

이어서 바위 길과 작은 숲길을 지나며 펼쳐진 능선을 아래로 밀어 내며 2시간여 오르니 베이스 캠프 같은 넓은 초원이 있고 그곳은 양 옆 외에 또 다른 경치가 보인다. 멀리 시링산 언저리에는 언제 왔는지 모르는 힌 구름이 두 개 봉오리를 솜이불처럼 덮고 머리만 가지런히 보여 준다. 가득 담긴 운무를 걷어 내고 볼 거리를 제공 하는 날씨가 고마울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왼쪽에서 밀려 드는 구름 파도에 휩쓸려 갈 것 같은 시링산과 푸르러 가는 하늘을 사진기에 담는다. 좋은 경치에서 사진 찍는 것은 등산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리고 밤낮이 같아지는 추분 정도의 경치와 온도가 있는 곳에서 휴식하며 맛난 간식과 담소를 즐겼다.

더 오르니 맨땅이 들어난 넓은 장소가 있고 방목하는 소와 말 수십 마리가 썩여 있다. 가만히 보니 소는 다들 누워 있고 말들만 갈색으로 변해 가는 풀을 뜯고 있다. 동물 중 좀처럼 눕지 않는 것이 말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고 어떻게 서서 휴식이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무튼 말의 튼튼한 관절과 엄청난 폐활량의 기를 받은 듯한 기분으로 씩씩하게 또 다른  절기를 찾아 북경 제일봉으로 향한다.

바위들이 능선을 만드는 오른쪽으로 바짝 붙어 걸으니 돌 틈에다 뿌리를 내린 몇 송이 꽃들은 가을이 몰려있는 경치를 향해 창을 열었다. 나도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창틀에 턱을 고이고 훔쳐보니 가녀린 들국화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바람이 얼굴에 와 닿았다. 아래에는 꽃과 풀, 열매가 가을을 주제로 한 화첩처럼 펼쳐 졌고 벌들은 막바지 꿀을 따고 먼산은 누렇게 물들어 간다. 그리고 귀뚜라미인지 여치인지 모르는 풀벌레 소리가 벼랑 위로 들린다. 한마디로 가을이 넝쿨째 아래로 아래로 굴러간다. 그 위로는 푸른빛 하늘과 힌구름이 또 다른 경치로 아름답다. 북쪽에서 불어와 좀더 성숙한 가을을 만드는 멋있는 한로의 추색을 마음에 담았다.

또다시 약간의 심호흡이 필요한 오르막을 지나니 정상의 돌무덤이 보이고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경치를 보느라 왔다 갔다 한다. 더디어 최고봉이 눈에 들어 온다. 마지막 힘을 모아 정상에 올라 둘러 보니 사방의 풍광이 서로 다른 모양이다. 어떤 곳은 안개로 덮여 있고 또 다른 곳은 맑다. 이따끔씩 몰려 오는 운무는 산을 넘으며 그 사이를 오르는 사람들은 가렸다 열었다 하며 선경의 세계를 만든다. 단체로 온 젊은 중국인들은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으며 왁자지껄하다. 아마도 처음 오는 이들이 많아 감동도 남다를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경치가 펼쳐지는 정상(해발 2,303미터)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휴식하려 했다. 하지만 이곳은 서리가 내린다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의 기온이라 춥다.

어쩔 수 없이 서둘러 하산하니 고산의 변화 무쌍한 날씨가 우리를 안개 속으로 몰아 넣었다가 너무 하다 싶으면 멀리 펼쳐진 능선을 보여 주기도 한다. 내려올수록 발아래 야생화는 많아지고 능선들은 조금씩 가을빛으로 물든다. 그럴수록 온도는 올라가 바람막이 지퍼는 열어야 했다. 이렇게 오를 때와 반대의 절기를 느끼며 가을이 시작되는 해발 30미터 전후의 북경 왕징에 도착하니 링산 산행 후 가장 이른 시간이다. 시내에도 펼쳐질 가을을 예습하고 돌아온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 하며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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