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가을 계곡을 걸으며!
9월23일!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이다. 똑같은지 재어 보지 않았지만 그럴 것이라 믿고 균형 있게 시간을 배분 하며 무링산 등산길에 오른다. 올 가을에는 중매쟁이를 잘 두어서 인지 자꾸만 새로운 산을 소개 받는다.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첫 대면한 마음씨 좋은 여편네 같은 둥실한 경북 제일봉 동호딩(东猴顶), 그 다음 함께 생활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는 악처 같은 구아산(狗牙山), 세번째는 북경 동쪽 제일봉 무령산이다. 이름으로 짐작컨데 안개 자욱한 성격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여인네 같은 산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처음 가는 산이고 해발 2,118미터라는 말에 기대감이 크다.
고산은 9월 중순 이후 가을색으로 단장한다. 그런 생각에 마치 우수에 젖은 여친을 소개 받은 기분이다. 잠시 바이두에 들러 어떤 모습인지 알아 보았다. 엉덩이 크고 체격 좋은 근육질인지! 솜털처럼 연약하고 섬세한지! 아니면 커리어우먼처럼 멋진 스타일에 자신감이 지나쳐 오만 방자한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오리무중 지랄 같은 성향인지! 검색 결과! 산 아래 복숭아 꽃이 날릴 때 산 위에는 눈이 오기도하고, 낮은 곳에 계속해서 비가 내려도 산에는 천리를 내다 볼 수 있는 청명한 하늘이 펼쳐 지기도 한단다. 그리고 삼리에 같은 하늘이 펼쳐지지 않는다. 즉 동시에 3개의 계절이 있다고 하니 이거야 원! 어떤 형태의 상대인지 도무지감을 잡을 수 없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출발!
우여곡절로 낭비한 시간을 포함해서 3시간 넘게 달려 정문인 남문에도착해 표를 샀다. 검표를 하고 21킬로를 냅다 달리니 등산은 온데 간데 없고 관광 온 사람이 된 우리는 한방에 정상 주차장에 섰다. 이런 산행은 처음이라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아 볼 것은 다 보았다. 표 검사를 마치고 산길로 들어 서니 사람이 그리운지, 자기들 자리를 침범한 포장된 대로가 얄미운지 싸리나무 등이 각각의 높이로 도로를 향해 늘어 졌다. 가을 기운이 완연한 잎들은 주변 국화와 어우러져 원숙한 누님의 서정이다. 이렇게 물들어 가는 풀과 잡목을 지나 노랗게 변해가는 자작나무 도열을 받으며 계속 위로 오른다.
잠시 후 연하지(连花池) 호텔이있는 곳에 내려 방향을 잡은 후 다시 차에 올라 6킬로 전방의 주봉을 향한다. 내려 보이는 숲에는 기골이 장대한 전나무가 빼곡하다. 얼마나 굳센 기강인지 이 거대한 산을 하늘로 빼 올릴 듯 한형상! 즉 역발산기개세다. 그러나 푸른 잎 사이로 올라 오는 노란 빛은 마치 노장군의 머리에 힌 머리카락이 돋는 듯하다. 이제 멀지 않아 이들은 바닥을 금빛 융단으로 만들 것이고 실핏줄 같은 가지는 하늘을 수놓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고요히 내리는 힌 눈 이가지를 덮고 숲은 수면처럼 조용해 진다. 그때 입김 가득한 거친 호흡으로 이산을 타며, 먼 발치에 뛰어 가는 산짐승이 차지한 산야를 나누고 싶다.
상념에서 깨어나기도 전 정상 주차장에 도착 후 몇 발자국 만에 주봉에 이르니 바람이 심하게 불고 추운 기운이 든다. 많은 관광객과 교대로 “경동제일봉,연산산맥 주봉”의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했다. 내려 보이는 굵은 능선은 마치 산신령이 노란 물감을 달고 미끄럼을 타듯 물들어 가고 그 위로 부는 바람은 이를 더욱 재촉한다.
다시 연화지 호텔이 있는 곳에 내려와 처음으로 걷기 시작 했다. 1차목표는 용담폭포까지 6킬로다. 넓은 2차선 도로 내리막 주위는 나무가 많다. 북경주변의 바위 산과 다르게 92%가 산림으로 덮여 있어 마치 터널을 걷는 듯하다. 중간 중간붉은 열매가 달린 생소한 수목이 시선을 끄는 도로에는 북문에서 오르는 차량이 정상을 향한다. 앞이 훤하게트이는 먼 시야에는 튀어 오른 바위산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기도 한다. 몇 명 안 되는 우리는 수십명이 함께 등산하는 것처럼 길게 한 명씩 떨어져 내려 오는데 그 길이가 적어도 수십 킬로는 되어 보인다. 가을날의사색을 방해 하지 않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큰길 산행을 마치고 용담폭포에 이르는 작은 산길로 접어드니 삭도는 물들어 가는 단풍을 헤치며 대롱대롱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그 아래에는 건강을 위해 걷은 사람이 많다. 길을 따라 30분정도 내려 오니 폭포로 이어지는 계곡물이 흐른다. 좋은 경치라 각자의 폼으로 사진을 찍는데 그 모양새가 여러 가지다. “웅덩이에 사색을 떨어뜨리는 사람, 먼산을 보며 가을날 헤어진 첫사랑을 그리는 이, 말굽버섯이 있는 자작나무를 주시하는 현실주의자” 등이 어우러져 추남들의 “생각하는 오뎅?”이라는 가을 작품이 완성 되었다. 마음속의 걸작을 계곡물에 띄우고 모래가 있는 공간에 식사 자리를 펴니, 냇물 소리는 운치를 더하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공기가 가슴까지 파고든다. 소박한 찬이지만 풍성한 가을을 올려 놓으니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이제 2시간여펼쳐지는 가을 계곡을 감상하며 산행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용담폭포다. 정면에 서기도 전 건너편 기암괴석과 눈앞의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설악산 어느 곳을 보는 듯 하다. 내려 서니 수십 미터 폭포가 절벽에 바짝 붙어 쏟아지는데 마치 이산의 새털구름을 모아 내리는 것 같다. 언덕 위에는 단풍으로 치장이 되어 있고 아래 넓은 바위는 돼지 머리 제상을 차리기에 안성마춤이다.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내면 멋지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잇는다.
개울 곳곳에 가을과 어우러진 경치가 있다. 심심치 않게 있는 아치 다리는 잘라 건너는 재미와 냇물 중간 깊숙한 단풍까지 볼 수 있게 한다. 절벽 계단 옆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여물어 가는 웅덩이 속살을 하얗게 헤집는다.그 주위에는 담소를 나누며 여유롭게 쉬어가는 등산객들이 군데 군데 있다. 길에서 내려와 개울의 둥글 넙적한 바위를 건너 뛰니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새로운 경치가 보인다. 모퉁이마다 숨바꼭질처럼 나타나는 아름다운 경관이 있고 또 멀게 보이는 날카로운 기암괴석은 단풍을 털며 벌써 겨울 준비를 하는 듯 하다.자꾸만 나타나는 새로운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앞뒤를 돌아 보니 어느덧 서문에 도착 했다.
덩치 크고 육감적인 몸매를 가졌지만 섬세함과 가녀림이 곳곳에 숨어 있는 산이라 한번에 다 느낄 수가 없다. 다른 날 이산의 주된 절경인 운무 깔린 풍경과 마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산속 가을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