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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립 Dec 13. 2017

봉황타 겨울 산행

첫눈을 맞으며

첫눈 내리는 날 산행!
짧은 지난 가을을 나만의 방법으로 길게 보냈다. 그것은 해발 2,000미터 이상 높은 산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8월 말부터 시작되는 고산의 추색을 느낀다. 시내에는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그곳은 다르다. 8월26일 북경 북쪽 제일봉(京北第一峰)타 동호딩을 찾으니 산비탈에 만개한 국화가 먼 산들과 마주하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맞추어 운치 있는 가을을 흔든다. 그 사이를 헤치는 바지단에는 갈색이 묻어 난다. / 9월2일 북경제일봉 동링산 산행 때 바라 본 시링산의 아름다운 구름을 전망으로 막마지 풀을 뜯는 초원의 말과 소들 그리고 해발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가을 기운이 있었다. / 9월23일 북경 동쪽 최고봉(京東最高峰) 무령산 등산 때 쭉쭉 뻗은 기개 높은 전나무 위에 물들어 가는 노란 침엽과 길가에 늘어진 갖가지 단풍! 이 모두가 긴 가을을 만들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 산행의 첫날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타 가는날! 조금 귀찮았지만 겨울날 땀 한번 쭉 흘리는 운동을 위해 용기를 냈다. 흐린 날씨지만 공기가 맑아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해 들머리에 도착 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씨라 중간 중간 옷을 벗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잘 나 있는 등산로를 오르는 겨울 산은 고요하고 숙연하다. 풀벌레 소리도 없고, 바람을 비벼 내며 물들어 가는 잎들의 소리와 여름날의 정열도 남아 있지 않다. 오로지 바위 틈에서 가녀리게 흐르는 물소리만 아무런 장애 없이 귀에 와 닿는다. 웅덩이 주위에는 밤시간 온도를 가늠케 하는 하얀 얼음이 작은 낙차를 호위하며 높아가는 기온을 견디려 애쓴다. 그 위에 달린 열매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가지와 한 몸이다. 하지만 이 낱알 한 개는 수 만개의 정취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밋밋한 겨울 산야의 홍일점이다.


좀 더 가쁜 호흡으로 혼자 앞서 나가며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겨울 산을 끝까지 보아도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하다. 얼마 후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청솔모 한 마리가 외마디 소음으로 나무 위를 뛴다. 잎이 없어 동선 끝까지 보니 잠시 멈추어 나를 바라본다. 위협을 느끼지 않았는지 그다지 빠르지 않는 동작으로 곡예 하듯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무의 흔들림도 금새 사라지고 나의 시선도 거두어져 모든 것이 원위치 되었다. 흔히 보이는 것이지만 언제나 예사로 보지 않은 것은 고요한 자연에서 느끼는 풍경이라서 일 것이다.


그렇게 몇 곳의 경치를 느끼며 3개의 안부를 지나 정상에 서니 싸라기 눈이 오기 시작하고 돌들은 하얗게 겨울 옷을 입는다. 먼산을 보니 한쪽 면은 구름이 있을 뿐 멀리까지 보인다. 또 다른 쪽은 점점 뿌옇게 변한다. 정상 돌무덤 위는 추워지고 바람은 자꾸만 온도를 내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석처럼 끌리는 장대에 붙어 서서 인증 사진을 찍는다. 잠시 후 조금 내려와 바람 적은 곳을 찾아 식사 자리를 펴니 눈발은 점점 굵어 진다. 그래도 먹는 것은 빼 놓을 수 없어 길게 자리 하고 갖가지 반찬과 함께 평소와 달리 빠른 속도로 식사 한다. 그럴수록 손은 더욱 곱아져 젓가락질이 잘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막걸리,와인 등을 마시며 몸에 온기를 보충 한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쵸코바님의라면과, 바이올렛님의 생강차, 진맘님의 특별한 차를 마시니 이제야 어깨가 좀 펴졌다.


묘상으로 내려 오는 하산 길! 본격적으로 함박눈이 오기 시작하고, 나무는 잎 없는 가지로만 하늘을 가린다. 그런 뿌연 공간에 하얀 눈송이가 가득 날리고 숲은 한 없이 고요하다. 귓가에 손을 모으니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마른 풀숲에 눈 내리는 소리는 마치 먼 여인의 한복 벗는 소리와 같다” 그렇게 갈색이 남아 있는 낙엽에 하나 하나 소리 없는 소리로 쌓여간다.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멈추어 사진을 찍으니 춥고 급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첫눈 내리는 정감이 가득 느껴진다.
시야가 탁 트인 곳! 먼산을 배경으로 가득히 내리는 눈은 고요함 속에서 역동을 자아 내는 한겨울 경치다. 그 사이에는 많은 나무와 바위들이 그 동안 무료함을 떨치고 눈 오는 날에 어울리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를테면 아직 잎이 있는 나무는 눈송이가 쌓여 목화 꽃이 피어난 것처럼 포근하다. 멀게 우뚝한 바위는 마치 봉황타의 새끼 봉황이 내려 앉아 설경에 빠져든 듯 하다. 그러는 사이 가지에 겨울 옷이 한겹 입혀져 짓궂게 스틱으로 건드리니 눈 세례가 되어 얼굴에 날린다. 이런 우리의 행렬은 점차 단색으로 변해가는 산에 엣지 있는 포인트를 만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첫눈 산행의 감동을 큰 소리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 진행 되는 계곡 길에 들어 서니 얼음 위에도 눈이 쌓였고, 그 사이에 내리는 물은 이를 방해 하지 않는다. 넙적한 바위에는 눈의 덫에 걸린, 앞선 사람의 미끄럼이 남아 있다. 터널 같이 이어진 계곡에는 눈 쌓인 돌들이 오밀조밀 정겹고, 그들의 대화를 모아 놓은 것 같은 시린 물소리가 졸졸 인다. 이러한 경치에는 위험도 있어 주의해서 밟고 건너 뛰며 등산의 즐거움을 누렸다. 가끔씩 보이는 버섯도 채취하며 도로에 눈이 쌓이면 어떻게 하나! 하며 갈 길을 걱정하기도 했다. 종점에 이르니 눈 온 흔적이 없다. 등산한 우리만 본 첫눈 이었다. 돌이켜 보니 오늘 보다 하루 빠른 2015년 11월24일, 눈이 펑펑 오는 토요일에도 이산에서 등산 했다. 이제 봉황타 하면 눈 오는 산행이 머리에 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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