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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Mar 29. 2019

디자이너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가 04. 불안

제2장 디자인의 미래예측_04

불안의 강력한 미래 예측력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나 멋진지 그 감동이 한동안 가시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총알을 피하는 장면은 여러 곳에서 패러디가 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내가 왜 그 영화를 보고 그리도 흥분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몰입되었었을까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도 합니다. 사실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왜 미래의 주인공이 사이버 공간에서 프로그램이라는 적과 싸우는데 총을 쏘고,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의 긴 가죽 코트를 입고 격투기로 싸울까요? 

참 황당하기 그지없는 설정입니다. 왜 프로그램은 인간보다 훨씬 강한 모습으로 인간과 싸울 수도 있을 텐데 인간의 모습 그것도 정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나 싸울까요? 


저는 도대체 영화의 어디에 공감하고 재미있다고 느꼈을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며 든 생각은 와 정말 영화 죽인다! 그리고 언젠가 컴퓨터가 똑똑해지면 인간을 해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황당한 허구가 아닌 흥미로운 미래로 여겨지는 이유는 컴퓨터가 진화하여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식에 공감하기에 그려지는 모습들도 실재감이 있는 것입니다.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도 그렇습니다. 왜 미래의 컴퓨터가 육체미를 뽐내는 아놀드슈왈츠제네거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차라리 인간에게 치명적이며 기계에는 아무 해도 없는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왜 기계가 인간 그것도 육체미 빵빵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인간과 기계의 관절 구조는 달라 기계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모습을 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곳에 토를 달지 않고 열광하였었습니다. 단순히 재미있었기에 그랬을까요? 


이 영화도 컴퓨터가 똑똑해지면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 속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하기에 영화의 다양한 표현을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의 유사는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SF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Space Odysse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01년으로 인류가 우주에 나가며 매우 미래적이고 흰색으로 일관된 공간 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사는 모습이 나옵니다. 

2001년은 이미 13년 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에 나가 살지도 않고 온통 하얗고 아무것도 없는 실내에서 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영화를 기념비적인 영화로 칭하는데 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에 그려진 많은 미래의 모습들이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미래를 예측했던 사람들이 지탄받기는커녕 아직도 선구자로 칭송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찬가지로 그들이 그려낸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담은 메시지가 의미 있고 공감 가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우리 디자이너들도 미래에 꼭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재의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지평을 연 이태리 멤피스 그룹 Memphis Design Group의 에또르 소 사스 Ettore Sottass나 알랙산드로 멘디니 Alessandro Mendini 같은 디자이너들은 너무나도 기능주의 합리주의에 중심을 둔 디자인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을 것입니다. 


80년대 초반 만해도 철제로 만든 책상과 책장을 사무실에서도 쓰고, 군대에서도 쓰고, 동사무에서도 쓰고, 학생들의 공부방에서도 썼던 시절이 있습니다. 이러한 무표정한 디자인에 대하여 그들은 하루 종일 밖에서 피곤하게 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일터와 같은 가구들 속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왕이 된 것 같은 의자와 책을 꽂아달라고 팔을 벌리고 있는 책꽂이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 멤피스 디자인그룹의 디자인은 그 당시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를 보고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들이 지적한 문제의식에 공감을 하고 감성적이며 인간적인 디자인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용자인터랙션도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말 정보기기가 출현하면서 점점 더 기능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졌을 시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무능함을 탓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시대의 인간이라고 낙담하고 쫒아가기 힘든 새로운 정보기기들은 새로운 신인류를 위한 것들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러한 정보기기들이 사용하기 어려운 것은 사용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설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정보기기들이 아무리 기능이 좋고 많더라고 사람이 사용하기 어려우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사람이 사용자가 편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용자 인터랙션의 개념을 주창하였고 사람들은 ‘맞아 내 잘못이 아니라. 기계가 잘못 만들어진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사용자 인터랙션은 가장 중요한 정보기기 설계의 고려사항이 되었습니다.     



불안의 강력한 미래예측력

이렇듯 현재의 불안이 미래에 대응하게 하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심리학적으로 불안은 미래가 현재보다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밤늦게 회식을 하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시속 100km 이상으로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한다면 어떨까요? 매우 두려울 것입니다. 

왜 우리는 두렵다고 느낄까요?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을 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갑을 잃어버리면 불안해지는 이유는 누군가가 내 카드를 이용해 돈을 빼가거나 내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시험에서 0점을 받으면 불안해지는 이유는 부모님에게 혼나거나 학점이 모자라 다시 등록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까 봐입니다. 


이와 같이 불안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그리고 불안에 대응하는 사람의 태도는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불안하게 원인을 공격,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는 것(상황지향), 그리고 불안해진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태도(원인지향) 등의 태도를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디자인의 미래는 의지에 의하여 열려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디자인의 역사를 바라보면 디자인의 발전을 가져온 커다란 전기들은 예측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하여 고민하고 새로운 답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디자인의 시작은 손으로 만들던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에 품질이 떨어진다는 문제의 발견으로부터 시작하여, 독일 공작연맹과 바우하우스는 손으로 만들던 것을 그대로 기계가 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하거나 적절치 못함을 지적하고 기계가 생산하기에 적절하고 아름다운 형태가 있다는 신념이 만들어낸 것이며, 전후의 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대량 생산되는 제품들을 보다 상업적으로 만들기 위한 상업주의 디자인이 그랬고,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기능주의 합리주의의 문제를 지적한 포스트모던디자인 등 모든 디자인의 주요한 변화는 이와 같이 당시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답 모색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가 불안해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이 미래를 여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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