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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01. 2024

바람 아까운데 산책이나 갈까요?

호시탐탐 개수작

늦바람이 무섭다.

사실이다.


세상은 코로나로 뒤집히는데 나는 마스크 쓰고 호시탐탐 그자를 만날 기회만 노렸다. 뭐든지 핑계를 만들어냈다. 이게 나혼자 하는 삽질은 아닌 것 같은데 그자는 어찌나 멀쩡하게 정중한지 속이 탔다.


아니 저기요, 저만 그런거에요?


그자의 본거지는 여기가 아니고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담스러운 사람은 되고싶지 않았다. 그냥 좋은 친구로 잘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자에게 손흔들며 배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사람 마음이 그런게 아니잖아? 좋아지면 티가 나고, 티가 나면 욕심도 나고, 욕심이 나면 드러내고 싶고 그러다 옆에 나란히 서고 싶다. 다정하게.


사람을 만날 때 조건을 보고 만나기 시작하면 마음이 쉽게 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밀당같은거 하면서 관계를 확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앞뒤없이 무작정 이러고 빠져들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늦었다.

죽은 줄 알았던 연애세포가 물에 닿자 그냥 빵빵해져서 물 위로 둥실둥실 떠다닐 것 같았다.


자기 입으로 ‘유니콘 하고 있잖아요’ 하던 그자는 그냥 손에 닿지 않는 지상에 없는 존재로써 유니콘이긴 했다. 20년 유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늘이 높고 바람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뭔가 연락할만한 핑계를 만들어내는데 날씨가 제일 만만하다.

“바람이 아까우니 산책이나 갈래요?”


넙죽 또 가자고 하더라. 그러니 내가 안헷갈리니? 너 뭐니?


구름이 근사한 날이었다. 끝내주게 아름다운 시민공원을 다리가 아프도록 산책하고 시청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이자까야에 갔다. 예쁘게 손질된 회를 앞에 두고 그자는 술을 마셨고 나는 물을 마셨다. 평일이라 운전해야하고 내일 출근도 해야하니 사양했다. 소주잔에 물을 채워 잔을 치는데 어쩐지 술기운이 오른 그자가 귀엽다.

어 귀엽다. 사람이 귀여워지면 답도 없다. 잘생긴 얼굴을 꽃처럼 바라보는건 미모가 죽으면 사라질 환상인데 귀엽다??? 끝났다. 뭘해도 예뻐보여서 마지막이 언제인지 장담할 수 없다. 세상 큰일이다.


마감한 이자까야를 나와 또 느릿느릿 걸었다. 어쩐지 바람이 너무 좋아서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계속 같이 걷고 싶었다. 아마도 시청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이제는 더 걷기도 뭣하게 시간은 이미 내일이 되었다. 집에 가야지.

차가 주차된 방향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그자가 낙아채듯 손을 잡았다.

어 이건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다. 먼저 손잡은 건 내가 아님.

입으로 심장 뱉을 뻔 했는데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와... 그봐봐 나혼자 삽질은 아니었어!!


근데 너무 좋으니까 암말도 못하겠더라고. 한참을 묵묵히 손잡고 걷는데 그자가 왜 아무 말이 없냐고 했다.

"운전은 내가 할테니 집 밖으로 나와요."


그 때 트위터에서 줍줍한건데 머릿 속에 딱 떠오른 첫번째 사자성어는 인생관, 두번째는 연애관이라고 했다. 당연히 핑계가 생겼으니 카톡을 보냈지. 그날 아마도 카톡에 남아있을텐데 첫번째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두번째가 집콕생활이었다. 사자성어를 얘기하랬더니 운율만 맞춘 네글자였다.

그자는 웃었다.


재방송하는 세상의 모든음악을 듣고 헤어졌다.

그날 캐나다 여가수의 노래가 참 아름다웠는데 차에서도 손을 잡고 있는 그자때문에 나는 노래가 하나도 안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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