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는 서울사람이다.
그렇다. 일단 말이 억세지 않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여자사람 귀에 들려오는 실사용 서울말은 참 낯선 존재다. 주변에 다들 경상도 사람만 버글버글해서 평생을 "왜?" "됐다" "쫌!" "마~ 말아라" 단호하고 무디고 무뚝뚝한 말만 듣고 살았다. 내 언어도 거칠기는 매한가지라 남자사람의 일상적인 서울말은 그냥 좀 낯설고 낯설어서 "괜찮아요?" 같은 뉘앙스는 참 이유 없이 설렐 수 있다.
귀에 달달하게 감기는 소리에다 같이 와인을 마시고 거기다 유리창을 톡톡 두들기는 주변에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 더해졌지만 그냥 그건 타고나기를 다정한 그자의 성품일 뿐이다 하고 넘겼다. 그런 행동들에 설레고 마음 주기에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 나름 풍파를 해치고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함부로 의미두지 않는다. 말이 길어질수록 이유가 너절해진다. 여기까지만 하자.
2020년, 멀리서 코로나가 터졌다는 뉴스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야 말이지만 아닌가 너무나 뻔해진 표현일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얼마쯤 지나면 잦아들 줄 알았지. 마스크를 쓰면서도 설마 혹시 했다. 그렇다고 노는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조용히 둘이서만 계속 놀았다.
조용히 만나서 밥 먹고,
조용히 만나서 술 먹고,
같이 노는 게 이렇게 재미난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여튼지간에 그자는 오랜만에 나타난 좋은 친구였다. 나이가 들고 친구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서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개인적인 호불호는 분명하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며, 상처주기 싫고 무엇보다 상처받기 싫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하고 나를 거두며 사는 일만 해도 나는 충분히 고단했다. 쉽게 마음을 주긴 싫지만 가까이 있는 친구는 너무나 간절해지는 그런 시점에 그자가 나타났다.
내 나이 마흔 하나, 그자 나이 마흔넷.
비교적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녀 할 얘기도 많았다. 그자가 하는 대부분의 얘기를 나는 알아먹고 호응할 수 있었고 내가 하는 얘기를 그자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그자도 친구가 아쉬운 판에 나처럼 얘기가 주거니 받거니 되는 사람의 등장은 반가웠을 테다. 꽤 재미나게 잘 지냈다.
"라라관 앞에 같이 있던 그 남자 누구야?"
어느 날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물었다. 친구 동생이 나를 봤다고 한다. 남자사람 등장에 단톡은 부산스러워졌다. 와글와글~
부산에는 라라관이라고 끝내주게 맛있는 마라전골 집이 있다. 두말하면 입 아프고 세말 하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링크 건네줄 수 있다. (사장님은 그 사이에 서울에다 라라관 지점을 내셨다. 서울분들 라라관 갑시다!)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길에서 기다리던 나를 친구 동생이 보고 인사하려다 남자 사람이 있어 그냥 지나쳤다고 했다. 글자너머로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지는 친구들 얼굴이 그려졌다.
당신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으나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냥 밥친구다, 만나서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사이라고, 심지어 내가 소개팅 주선도 해줬던 사람이라고, 모임에서 만난 사람인데 비교적 멀쩡한 사람이지만 사심 같은 거 없다, 알지 않느냐? 연애도 결혼도 시들한 거.
그냥 오랜만에 말 통하는 뉴페이스라 그냥 술 먹고 노가리 까는 게 재미나다고 설명을 했으나 오랜만에 같이 밥 먹는 남자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래그래 밥친구부터 시작이지~~~ 하며 눈을 반짝이다 못해 글자 너머로 뛰어나올 것 같은 친구 얼굴이 상상됐다.
근데 어쩌나. 정말인데. 어찌해 볼 마음이 1도 없단 말이다. 그냥 오랜만에 재밌는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