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작은 사업을 하셨다. 지금도 하신다.
제조업 기타 등등 여러 업종의 소규모 사업장의 경리자리는 대체로 가족이다. 내가 바로 그 경리다.
내 전공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공부와 상관없이 일 할 사람, 회사에는 돈을 만질 사람이 필요했다. 믿을만한 사람. 사기를 쳐도 자식한테 사기를 당할 테니 좀 덜 억울하고 그런? 아마도 내게도 그 제의가 올 거라고 생각을 했고 나는 고민을 좀 하다 받아들였다. 경상도 장녀의 기본형 같은 인간이라서 일까. 비극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알아서 하시라 하고 나는 나대로 살았어야 한다. 생각해 봐야 너무 먼 과거고 돌이킬 수 없다.
회사는 망해가고 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해 회사는 송사에 휘말렸다.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회사에 관련된 어지간한 외부 업무 대다수의 담당자인 나로서는 내 일이 된다. 심지어 사장님이 아버지야. 이건 집안이 흔들리는 일이다. 개인적인 일은 표를 내지 않으면 숨길 수 있다. 회사에 닥친 위기는 내 사변적이고 개인적인 일과는 차원이 다르게 나를 후드려깠다. 업무 외에 변호사 사무실에 가져다줄 길고 긴 설명서를 쓰고(변호사님은 그걸 거의 고대로 변론서에 쓰셨더라. 인문대 졸업생의 가오가 빛났다.) 법원으로 등기소로 쫓아다니는 모든 일이 나에게 쏟아졌고, 내 업무는 그대로 계속 내 일이었고, 상심한 사장님을 아니 아버지를 그러니까 사장님을 경계를 넘나들며 위로하고 살피는 것까지도 업무가 된다.
정말이지 가내수공업은 하는 게 아니다.
제조업인데 집, 아버지가 하시는 거니까 가내수공업이지 달리 뭐라 부르겠는가.
사옥 빌딩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정도의 규모 정도래도 어쩐지 감정과 일의 경계가 분리가 안될 텐데 소규모다? 아닌가 나라는 인간의 특성상 분리가 안 되는 건가? 근데 그거 되는 거예요??
이건 사람을 갈아 넣고 혹사당하는 걸 지켜보고 마음 아파하며 퇴로가 막힌 뫼비우스의 띠 같은 매일매일을 반복하는 상황이 된다. 일이 잘 돌아갈 때는 그건 그거대로 얘기가 많지만 돈이 막히니 이건 그냥 지옥도다.
주말 알바자리를 알아보다 급 현타가 와 쓰고 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 인생은, 내 시간은, 내 돈은 다 어딘가로 콸콸 쏟아져 나가고 피폐해진 내가 남았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었다. 타도시의 대학으로 탈출하며 거리를 두고 나도 나이를 먹으며 용서와는 다른 결의 이해가 되는 날이 왔다. 어쩌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점이다.
근데 아버지를 버릴 수가 없다. 아... 징글징글한 인생.
어쨌든 속이 답답해서 써보는 얘기.
앞으로 무슨 일을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다.
이 글은 업무 시간에 쓴 게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