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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Nov 04. 2024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

아버지는 공장에서 숙식을 하신다. 일은 이미 아버지와 분리될 수 없다. 워라벨이고 나발이고 그런 건 다 남의 얘기다. 공장을 누가 떠 매고 가는 것도 아닌데 곁에서 애면글면 하며 지켰다. 회사는 당신 인생의 가장 빛나는 성취이자 가장 빛나던 날들의 증거이며 자랑이다. 지금은 쪼그라졌지만. 그건 세상 탓을 하자. 그러면 된다. 


아버지에게도 집이 있다. 명절 차례와 기제사를 모실 공간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제사를 지낼 순 없으니까. 그 명절용 주택에 내가 산다. 다행히 그래서 생활공간은 분리되어 있다. 명절용 주택에 1년에 열 번쯤 오시나? 그치만 집에서 주무시지는 않는다. 우리 집은 그래서 나 혼자 사는데 제사를 지낼 가재도구와 집에 살지 않는 부모님 살림과 내 짐과 책이 뒤섞여 좁아터지기 직전인데 그럭저럭 문은 닫힌다. 


아침에 눈뜨면 오늘치 해야 할 일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각종 결제일과 은행 이자 납입과 공과금 날짜는 어쩜 그렇게 칼같이 돌아오는가. 붙박이로 십 년이 넘은 유일한 경리는 머릿속에 이미 그 날짜들이 박제되어 있다. 오늘 돈은 어디서 어떻게 나와 어디로 흘러가나. 최대한 누워서 버티고 버티다 일어난다. 누워서 에너지를 모은다. 이미 시간은 데드라인이다. 그래, 가자. 개가 기다린다. 


진짜다. 개가 기다린다. 

우리 개순동은 언니가 집에 가는 건 너무 싫지만 아침에 오는 시간은 용하게 안다. 내가 올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개행패를 부린다. 언니 내놔. 혹여나 아침에 늦을 일이 있으면 전날 퇴근 전에 개를 붙잡고 진지하게 얘기한다. 개순돌 언니가 이러저러해서 내일은 아침에 못 와. 나와서 기다리지 마.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두고 가면 그 뒷날 좀 덜 기다린다. 휴가 전에 개한테 얘기를 안 하고 퇴근을 했다? 아침에 사장님 모닝콜에 일어나야 한다. 

"니는 와 순돌이한테 안 온다는 말을 안 해가 아가 저래 기다리구로 하노!" 

전화를 바꿔주면 언니가 미안해. 오늘은 언니가 안 가는 날이야. 기다리지 말고 놀아~ 언니 내일 갈게. 구구절절하지? 진짜다. 


개님과 환영쓰담의 시간을 갖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하루가 시작된다. 일이 많을 때는 많은 대로 애로가 있었다. 근데 매출이 쪼그라들고 돈이 잘 안 돌아가니 하루종일 돈 걱정이 일이다. 이미 애저녁에 내 돈도 다 들어갔다. 탈탈털어줌. 왜 진작에 회사 일이랑 개인 자금 분리를 안 했어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아버지가 24시간 자식보다 더 귀하게 살피는 일을 두고 발 담가 같이 일을 하면서 분리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이건 내 생각이고 백 프로 분리를 하고 돈이 들어가야 하는 시점에서는 손절을 하는 게 맞다. 아는데 그게 안 됐다. 당장 결제해야 할 매입송장, 세금고지서 앞에서 그게 되냐고. 영감이 애달아하는데 내 돈이라고 손에 쥐고 어떻게 등을 돌리냐고. 아 쓰고 보니 내가 그래서 망했구나. 


 그렇게 종일 보내고 퇴근하면 그나마 숨을 쉰다. 현관문을 열고 삼보 만에 찹찹한 거실 바닥에 누워 바닥이 내 체온에 데워져 약간 미지근해지면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본격적으로 눕는다. 이미 내일 출근도 하기 싫지만 개님이 기다리시겠지. 아효. 개순돌이 우리똥개 누렁이 예쁜이 개뚠뚜니, 언니가 내일 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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