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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Nov 18. 2024

일기, 어느 날의 기록


본인상 부고가 왔다. 


누군지 알고 나니 대번에  돈을 몇 년째 안 주는데 부고를 보내냐고 된소리가 먼저 터졌다. 

그 돈은 못 받겠네. 부글부글. 


그리고 3초쯤 지나 아차,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돈 소리가 먼저 나오다니 내가 이렇게까지 바닥으로 떨어졌나 


돈이 많지도 않다. 곧 입금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물건부터 보낸 지 삼 년째, 그러고는 묵묵부답 거래도 끊었다. 민망함에 그 얘기를 부러 입 밖으로 꺼내보지만 그래봐야 사람의 죽음 앞에 돈 얘기를 먼저 꺼낸 비정한 인간(이라 쓰고 약간 쓰레기 같은 기분). 


아무리 그쪽의 신의를 문제 삼아 목소리를 내 본들 망자를 향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몇 년째 요리조리 핑계만 대고 채권만료시한을 넘겨 물품대금을 떼먹을 작정을 한(거라고 추측을 하고 마음정리를 끝냈다) 거래처를 채권추심에 넘겼다. 작년에 내용증명을 보내고 달에 얼마씩 연말까지 변제하겠다는 자필 싸인을 받고도 그쪽은 돈 십원 입금이 없었고 설에도 2월 말, 3월에도 3월 말까지 하며 기한을 연장해 왔다. 맘 약한 사장님은 그래도 기다려주자 했지만 성의가 있었다면 얼마라도 입금을 하고 사정을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우리가 지금 몇 년을 기다린 거냐고. 3월 말을 기점으로 연락 그만하시라 자르고 서류 정리해 내 손으로 의뢰했다.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 사정 다 들어주자니 내 사정은 누가 알아주냐고, 우리가 줘야 할 돈은 또 어쩌냐고 다달이 미뤄진 미안함과 전화에 조아리며 건네는 죄송합니다에 나도 이제는 지쳤다고. 숫자 너머의 사람을 생각하기에는 내 바닥이 너무 위태롭다.


어른이 되는 일이 이런 거였나. 건조한 내용증명을 보내고 채권추심 의뢰를 하면서도 1도 망설임이 없었다. 돈이 조여 오는 만큼 우리가 받을 돈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까 바들바들하는 내가 사실 좀 질리고 무서웠던 참이다. 그런데 부고에 대고 돈말을 먼저 하다니. 그렇게 경멸하던 장례식장에 쫓아와 부의금 함을 털어가고 상주 상대로 멱살잡이를 하는 무뢰한이랑 내가 다를게 뭔가. 그들은 그저 염치를 내려놓고 발을 움직였을 뿐이다. 


돈에 너무 쫓겼나 


일이 첩첩산중이라고 버티면서 내 바닥은 얼마나 골로골로 내려앉았나 


사는 일이 너무 비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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