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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Nov 25. 2024

남은 건 병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한동안 심한 불면증이 왔었다. 그때 이미 자궁근종 수술을 하고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삼천보 걷기가 힘들었고 잠까지 못 자니 몸은 정말 쓰레기 같은 상태였다. 운전하다 반쪽 몸이 바스러지듯 내려앉는 기분이 들고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다가왔다. 수면제를 처방받아먹으며 마음을 좀 버렸다. 허덕이며 어찌어찌 다시 잠을 잤다. 근종 이슈로 보조제도 다 끊은 상태라 회복은 더뎠다. 그래도 잠을 다시 자기 시작하니 조금씩 조금씩 더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다 당뇨가 왔다. 잠을 좀 못 자도 별다른 질병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20대, 30대라서였다. 40대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잠을 못 자니 바로 장기들이 들고일어난 기분? 아닥하고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넘었다. 


두드러기가 시작된 건 추석 무렵이다. 약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십 년 전쯤 매일 아침 멍게같이 울룩불룩한 머리와 얼굴로 잠을 깼다. 그때도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추측은 스트레스였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였다. 알레르기 내과를 다니며 좀 길게 약을 먹었었다. 이번에도 피부과를 가봤지만 스테로이드제는 혈당 반응을 일으키니 약 먹기가 겁이 났다. 대학병원 알레르기 내과를 예약해 두고 당뇨약을 받아먹는 내과에 가서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먹었다.  진료일까지 매일 피나게 긁을 수는 없으니까. 근데 이약은 너무 졸린다. 몽롱하게 약에 취해 온몸에 힘이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그 어질어질한 노곤함이 너무 싫다. 싫어도 안 먹으면 가려우니 방법이 없다. 진짜 울며 겨자 먹기로 약을 먹고 어지러움에 취해 밤새 잠인지 꿈인지 모를 시간을 보내면 조금 덜 가려운 몸뚱이가 오늘은 여기지롱 하며 울긋불긋한 아침을 맞을 뿐이다.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만성자발성두드러기. 

피검사로는 특이사항이 없었고 마음의 준비를 했듯 별로 놀랍지 않았다. 다만 확인사살 당한 기분. 이주치 약과 비싼 비급여 주사 처방을 받았다. 카드 삼 개월 할부를 끊으며 착잡한 마음. 이 삼 개월이 끝나기 전에 돈은 좀 해결이 될까? 이십 얼마의 주사를 맞으며 이 주사가 한 달에 한 번이라는데 몇 번 맞아야 두드러기가 사라질까 생각을 했다. 주사기가 보라색이던데 예쁘더라. 


편두통은 드문드문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고 간혹 찾아오는 소화불량 같은 건 일도 아니다. 늘어나는 건 약이다. 약사선생님이 두드러기 약이 덜 졸리긴 하지만 졸릴 수 있으니 약 순서를 바꿔 저녁에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다행이다. 낮시간에 병든 닭처럼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당뇨약을 먹고 밤에는 두드러기 약을 먹으면 되겠구나. 관리한다고 했는데 혈당은 요새 신경도 못쓰고 있다. 피검사하면 당화혈색소는 얼마나 나올까. 내과 선생님이 알레르기 내과 진료 보고 와서 다시 얘기하자고 했는데. 


지금 이렇게 차곡차곡 몸에 병이 쌓이는 모든 이유가 결국 스트레스라면 지금 이 상황을 개선하거나, 개선할 수 없다면 정리하는 게 맞다. 당뇨도 결국은 스트레스였으니까. 여러 요인들을 생각해 본다. 일단 경기가 나아져 돈이 좀 돌고 매출이 늘어서 걱정을 좀 덜어낼 수 있다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두고 매일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거리며 컴컴한 앞을 걸어가는지 아니면 제자리걸음인지도 알 수 없다. 아니라면 떠날 수 있을까. 나는 내 발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늙어가는 아버지를, 이 상황에 치여 심지어 시들어가는 아버지를 두고 나는 떠날 수 있을까. 나는 어쩌자고 내 발로 이 길에 들어서 살을 파먹다 못해 피까지 파먹으며 이 상황을 버티고 있을까. 


퇴근해서 런데이 30분 달리기 다음 순서나 하러 갔으면 좋겠다. 열두 번을 뛰는 동안 2주 차를 못 벗어나고 있지만 그저 1분 뛰다가 1분 30초, 그러다 이제 2분 달릴 수 있다. 달리기는 머릿속에 뜨끈해지며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그 순간이 좋았다. 다음 순서를 제 때 못하면 다시 되짚어 돌아가 또 했다. 내 몸이 순서지 달리 순서가 있을까. 당장 표 나게 즐거운 것도 행복한 것도 자주 없다. 매일이 반복이다. 사는 일이 그런 거 아니겠나. 생각은 그렇게 한다. 생각처럼 꾸준히 묵묵히 그렇게  지치지 말아야 하는데 요새 자주 임계치에 닿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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