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있었던 사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랑을 대하는 관점에 관해

by 파로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접했을 때가 기억난다. 보통 영화를 보러 갈 때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포스터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가기 때문에 이 영화가 이런 내용인 줄 모르고 갔었다.


아련한 내용을 비웃는 듯한 처절할 정도로 예쁜 영화 속 장면들, 주인공들의 요동치는 감정과 대비되는 조용한 OST. 영화를 관람하고 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 영화관을 나오면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경험을 했다. 그러고는 생각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라고.


그리고 5년 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이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되었다.


처음 이 영화를 남자 둘과 함께 같이 보러 갔었는데, 셋이서 평상시에는 나누지 않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혹시 너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냐?'

'그런데다가 이렇게까지 사무치게 사랑하는 정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같은 대화였다.




모든 걸 떠나서, 나는 이 영화를 성의 관점을 배제하고 바라보기로 했다.


조금은 오글거리는 이야기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때때로는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이기도 하다.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마찬가지고,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나 자신이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한다고 한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겪게 되는 사랑의 양상은 어떤 때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생소하다.


그런 관점에서 <콜미바이유어네임>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두 남자가 서로에게 빠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사람과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물질적인 것을 따지는 요즘 세상의 사랑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서로만을 바라보며 키워온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는가. 남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떠나고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지 않는가. 그것을 굳이 알려주는 것은 다른 의도가 아닌, 그 '사람'을 사랑했던 그때에 대한 하나의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나이를 먹은 우리들도 꽤나 많은 사랑을 해왔기 때문에 지나간 사랑들이 어떠한 종류였는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지금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네'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어떤 감정보다도 무섭게 다가오곤 한다.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우리는 어떤 관계'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같은 걱정들도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안타깝게 흘러만 가고 있는 시간들이고 그 시간들을 더욱더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게 된 사람과 지내는 시간이 언젠가는 종료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서로를 '연인'으로 지칭하지 못하지만 지금 우리 사이는 너무나도 좋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을 구태여 나누지 않고 상대방과 거리를 유지하겠는가?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사람과 함께하는 석양이 아름답고, 식사가 행복하고, 걷는 걸음이 가벼운데도?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나 <콜미바이유어네임>속 이들은 아니었다.


나는 오늘도 내가 나눌 수 있는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비록 이 사랑이 누가 봐도 곧 끝날 사랑이라 한다고 해도 말이다.


마지막 올리버가 말했던 "난 다 기억하고 있어"라는 말에 나 또한 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사랑은 식은 것이 아니고, 올리버가 엘리오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것도 아니다.


저 기억이라는 단어는, 둘의 6주간의 사랑 그리고 그 감정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더 무겁게 다가왔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본 이유는,

그들의 아픈 사랑에서 뭔가를 얻고자 했음이리라.


<콜미바이유어네임>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루어질 수 있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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