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위어, 트루먼 쇼
정말 유명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영화를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뒤늦게서야 관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직도 나에게 그런 영화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해리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이다.
이 대작들을 나는 단 한편도 보지 못했고, 아마 조만간 볼 일도 없을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중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보고 나서 혹시 내가 다른 감정을 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혹은 시리즈가 너무 많아서 보는데 시간이 많이 들 것 같아서?
그러나 언젠가는 보겠지.
예전에는 마음을 열지 못했던 영화가 어느 순간 갑자기 탁 꽂혀서 나의 인생 영화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트루먼 쇼>가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트루먼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행복한 가정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뭔가 주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트루먼의 인생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세상에 생중계되어 왔다.
그것을 직감한 트루먼은 뭔가 각본으로 짜인 본인의 인생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199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그때 당시에도 많은 상을 휩쓸며 작품성과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아직까지도 명작의 반열에 올라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트루먼 쇼>의 해석이 다양한 점이 가장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트루먼 쇼>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를 다르게 느낀다.
어떤 사람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개인의 사생활을 가볍게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는 영화라고 말하고, 다른 의견으로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삶보다는 본인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주제라고 말한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사실 틀린 말은 없다.
다만 무엇에 중심을 두고 영화를 관람했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
<트루먼 쇼>가 말하고자 하는 쉽게 소비되고 쉽게 잊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큰 주제라면 나는 이 영화를 긴 시간에 걸쳐 몇 번이나 다시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트루먼의 삶은 많은 현대인이 꿈꾸는 삶이 아닌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부족하지 않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동네 사람들도 그에게 친절하고 어려서부터 우정을 나눈 친구도 있다.
그런 트루먼이 '트루먼 쇼'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의 삶은 진정 자유로울까?
혹은 트루먼이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그 삶은 자유로운 삶이었을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크게, 혹은 작게 자유를 속박한다.
우리는 회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혹은 군대에 입대한 국군 장병들은 얼마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해 이번 한 달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 하루하루는 어느 정도로 자유로울까.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 들면 그래서 트루먼의 삶은 결국 행복한 삶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며 내가 처해진 상황이 달라질수록 <트루먼 쇼>의 이야기가 다른 느낌으로 소화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삶은 전 세계에 방영되고 있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굴레 안에서 소수, 혹은 다수에게 관람되며 하루하루 연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라고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부정적인 발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튜디오 바깥으로 나간 트루먼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처럼 자유라는 것은 상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자유는 곧 행복이라는 공식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에게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세상에 대한 비난을 내뱉는 것보다는 트루먼처럼 갖은 노력을 다해 내가 '불만'이라고 생각하는 상황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생이며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이유이기 때문에.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트루먼 쇼>를 아무 생각 없이 보곤 한다.
나의 관점은 지금 어디쯤 있는지,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래서 <트루먼 쇼>는 나에게 있어 인생 영화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