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바람난 가족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까지 잔인하지도, 그렇게까지 야한 장면도 없는 <바람난 가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묘하게 기분 나쁜 이야기를 건드린다.
바람난 아내, 바람난 남편, 죽음을 앞둔 아버지, 병원에서 담배 한대 주면 안되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많이 피우고 빨리 죽으라며 담배를 던져주는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도 다른 할아버지와 불륜중.
그러나 한 단위의 가족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나쁜 설정들을 때려 박은 <바람난 가족>은 마냥 '기분 나쁜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담고 있기에 단순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
타고 타고 올라 궁극적인 질문에 다다르면, '그래서 가족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아 입양아를 들인 부부는 입양된 아이에게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서슴없이 말한다. 입양된 것은 부끄럽지 않다, 그러니까 어깨를 펴라, 라며 말하는 문소리에게는 아이를 친구대하듯 대하는 친밀함과 어머니로서의 모성애가 동시에 느껴진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문소리는 애어른같은 아이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농담을 주고 받는다. 그 아이의 아버지인 황정민은 아이를 많이 사랑하지만 문소리와의 생활에서 얻는 성적 만족감이 높지 않아 자유로운 다른 여자와 내연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게 사랑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외딴 섬에 들어가 불륜 행각을 저지르다 아버지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내연녀의 유혹에 넘어가 몹쓸짓을 한다.
남자란 그런 동물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다. 이윽고 술에 취해 오토바이를 몰던 집배원과 접촉사고를 낸 황정민은 불륜 관계가 들킬것을 포함해 본인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질까봐 사건을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한다.
이후 그 집배원은 앙심을 품고 황정민과 문소리의 아이를 허름한 빌딩에서 던져 죽이고 본인은 자살하게 된다.
이 장면은 많은 논란이 되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어떠한 특별한 편집도 없이 건물 바깥으로 아이를 던져버리는 장면. <바람난 가족>을 처음 접한 내 입장에서도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진 않지만, 아이가 죽기 전에 어떤 두려움도 없는 일상적인 말투로 "아저씨, 저 진짜 죽일거에요?" 라고 물어보는 것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치고박고 난리를 치지만, 카메라는 이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비추고 있을 뿐이다.
이를 계기로 부부는 육탄전을 벌일 정도로 크게 싸우게 되고, 멀어진다. 이 싸움의 장면도 서로 속옷만 입고 별 다른 영화적 효과 없이 그들의 싸움을 비춘다. 단지 비출 뿐이다.
이후 문소리는 황정민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평소 썸을 타고 있던 미성년자와 관계를 맺게 되고, 황정민과의 관계에선 그토록 원해도 얻을 수 없었던 아이를 얻게 된다.
황정민은 문소리에게 기회를 달라고 말한다, 문소리는 거절하고 황정민은 돌아서서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한 단위의 가족이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추한 꼴들을 끌어모아 한번에 보여주는 이 영화는 기분이 나쁘다. 정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보고싶은것만 보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내가 <바람난 가족>을 보면서 기분은 나빴지만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선가 본듯한 그럴싸한 이야기'의 힘 때문이었다.
배우 윤여정의 배드씬도 그러하다. 윤여정은 속옷만 입은 채 다른 남자와의 배드씬을 소화해 냈는데 이것은 관객이 보고싶은 것을 보여주려고 함이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정들을 숨김없이 낱낱이 까발려서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이리라.
이후 윤여정은 임상수 감독과 몇개의 작품을 더 할 정도로 끈끈한 정을 보여주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을 담은 영화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만 보기에도 내 시간은 모자르다.
그럼에도 <바람난 가족>이 아직도 내 뇌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세상이 아름답다. 그리고 즐겁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간사한 성질을 애써 외면하고 살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일 것이다.
나는 너무 나쁜 내용만을 담은 영화만 보는 것도, 좋은 내용만 담은 영화만 보는 것도 안하려고 한다.
세상은 양면적이며 사람도 양면적이다. 다양한 것들을 보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 영화가 하는 큰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난 가족>은 나에게 있어 인생 영화 중 하나이다. 기분 나쁘고, 배울 것 하나 없어도 어딘가에는 이런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