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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 Jun 01. 2024

기 싸움의 고삐가 풀려버린다면?

츠츠미 유키히코, 2LDK

 같은 소속사에서 일하는 두 명의 연기자 지망생이 2LDK (방 2개, 거실, 주방, 욕실 1개의 구조인 방) 에 살게 되면 어떨까. 그리고 그들이 한 명의 여주인공을 뽑는 영화 오디션을 보고 온 날 저녁의 풍경은 어떨까?


 우리는 심심치 않게 동거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다. 가족이라도 서로 성격이나,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미묘하게 다른 차이점들로 인해 불편함이 있는데 하물며 남이라면 그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혹자들이 결혼을 하기 전에 반드시 동거를 짧게라도 해보라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2LDK>는 2LDK라는 좁은 장소에 둘 중에 한 명만이 뽑히는 오디션을 보고 온 간절한 여배우 지망생 두 명을 밀어 넣는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단 두 명, 그리고 영화 속에 나오는 장소는 저 집이 전부이다.


 둘은 평상시에도 너무나도 다른 성격으로 갈등이 있어 왔으나, 한 명은 이미 여러 에로 영화를 찍어오며 '선배'라는 호칭을 듣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그냥저냥 잘 넘어왔었다. 겉으로는 경력이 있는 것처럼 구는 선배이지만 그 경력들이 모두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해 온 것도, 그나마도 남들에게 인정받지 않는 경력들이라는 것도 본인은 다 알고 있다.


 그런 선배를 은연중에 깔보는 명문대 출신의 후배는 깔끔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공용 냉장고에 들어가는 음식들에는 모두 본인의 이름을 적어놓고 욕실에 있는 머리카락 하나도 거슬려 하는 성격의 소유자. 그러나 지금까지 남자는 만나본적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남자를 많이 만나 본 선배에게 열등감이 있다.


 이 둘은 서로를 존중하는 척 대화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그걸 눈치채고는 있으나 기분 나빠하면 지는 것이다. 계속해서 대화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를 비난한다.


 당장 내일, 둘 중에 한 명은 주인공이 되는 상황에서 선배의 분노가 폭발한다. 연이어 자제력이 없는 선배의 모습에 화가 난 후배마저 폭주하며 둘의 고삐는 풀리고 지금까지 간접적으로 표현해왔던 적대감을 겉으로 효출한다. 이 과정에서 <2LDK>는 다양한 방법으로 두 명이 서로에게 가하는 물리적 폭력을 나열한다.


 자칫하면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둘의 싸움은 폭력의 강도가 강해지며 진지해진다. 서로가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버텨왔던 것들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싸우는 도중에 필터 없이 입 밖으로 나오며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된다. 둘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며 승자 없는 싸움을 이어간다.


 배경을 2LDK라는 공간으로 가두고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인 장판, 세정제, 케첩, 변기뚜껑 같은 소재들을 이용해 다양한 액션(?)을 선보이는 것이 꽤나 신선하다. 김치 싸대기 같은 장면이 보기에는 이상하지만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듯이 매일 같이 보며 사용하는 물건들이 흉기로 변한 것이 이상하게도 흥미롭다.




 영화는 가상현실이며, 그 가상현실은 재밌으면 더 좋다. <2LDK>는 작품성은 둘째치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가 있으며 흥미롭다.


 둘 중에 누가 이겼으면 좋겠다, 를 떠나서 영화 초반에는 그렇게도 얌전하던 등장인물들이 봉인을 해제하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 한편으로는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고는 못하겠다.


 200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금 시선으로 보자면 배우들의 연기가 과한 면도 없지 않아 있고, 두 명이 지속적인 싸움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장치들이 조금은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2LDK>는 '배우 지망생 두 명의 갈등'이라는 주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뚝심 있게 이야기를 진행시켜 결론에 닿는다. 어떤 주제의식이나 의미를 담고자 하는지가 명확하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고민 없이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2LDK>는 처음 관람했을때부터 지금까지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들 없이 제시하고자 하는 캐릭터들의 성격과 배경을 보여주고 서로 대화와 움직임으로만 갈등을 유발해 하나의 긴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완성시켰다는 부분에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에게 자극제가 되어 온 영화이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객관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라고 생각이 되는 부분이 있다.

 <2LDK>는 그런 부분에 대해 교묘하게 밸런스 조절을 해 나간다.


 아직도 용기가 없어 소설을 쓰지 못하는 나에게 '거창하고 대단한 소재가 없어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좋은 귀감이 된다.


 어린 시절, 재미있는 글을 써보라며 용기를 실어준 영화 <2LDK> 는 나에게 있어 다른 의미의 인생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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