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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Dec 31. 2020

칼잡이 국어 선생

《스위트홈》과 《경이로운 소문》을 보다 떠오른 나의 선생들

《스위트홈》에서는 괴물들이 등장한다. 배에서 혀가 나오는 흡혈 괴물, 승모근이 너무 커 어디가 목인지 알기 어려운 왕 근육 괴물, 퀵실버를 연상케 하는 육상 괴물 등등. 1506호의 국어 선생은 이들에 맞서 칼을 휘두른다.


모두가 감염되는 좀비물과는 달리, 그린아파트의 사람들 모두가 괴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 ‘괴물화’가 진행되더라도 그의 의지에 따라 완전한 괴물로 변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성을 유치한 채 살아갈 수 있다고도 한다.     


작품에서는 괴물화가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다고 한다. 육상 선수로서 누구보다 빨랐으면 하는 욕망이, 아니면 누군가에게 1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육상 괴물을 낳은 것이라고 보면 그럴 듯한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블랙스완》의 니나가 그린아파트에 이사 온다면 검은 고니(black swan)처럼 생긴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이언드래곤을 공사친 김곤이 되었거나.


주인공 차현수의 괴물화는 오른팔이 새의 날개와 같이 변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고등학생 차현수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따금씩 그의 오른팔에 있는 다섯 획의 칼자국을 조명한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들까지도 그런 차현수를 도와주지 않는다. 차현수를 괴롭히는 학생은 어느 대기업 총수의 손자쯤으로 나온다.


학생은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선생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는 학원이 아니"라는 선생들의 클리셰도 있지 않은가.


《경이로운 소문》에서 소문이 위겐을 만나 카운터가 되기까지, 그리고 장물유통 회장이 “피해자 전수조사 드가라” 칼 때까지, 웅민이를 포함하여 중진고등학교의 학폭 피해 학생들은 선생을 믿지 않았다. 듣지 않으니까. 오히려 가리려 하니까. 아직까지도 저런 선생들이 학교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스승' 같은 선생은 흔치 않았다. 화내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들은 참 많았다. 적어도 스무 살은 족히 넘은 선생들이 기껏해야 열두 살도 안 되는 꼬맹이들에게 말이다. 어떤 선생은 열 살의 나를 텅 빈 교실에서 무릎꿇게 했다. 올 때까지 벌서고 있으라는데 오지 않았다. 세 시간 정도 지나 찾아가 보니 아직도 있었냐 하더라. 그만하면 양반이다. 바로 옆 반에서는 급식비를 제때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 살짜리 꼬맹이의 뺨을 갈겼으니 말이다.


중학교 어떤 선생은 반의 성적이 좋지 않다고 무릎을 꿇게 하여 그 허벅지를 파이프 비슷한 무언가로 때렸다. 아프게 때리지 않으면 패한다고 여기는지, 힘겹게 그리고 진지하게 때렸다. “당신 나 사랑해?”라고 하면 미쳤다고 할 거면서, 말로는 ‘사랑의 매’라 한다. 심하게 다쳐 온 친구의 얼굴을 보고는 "어디서 또 맞고 왔냐?"며 창피를 주는 것 역시 사랑일 게다.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했다. '전 선배의 선도부화'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비 걸기 좋아하는 거의 모든 선배들이 후배의 머리 길이를 살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라 했다. 쉬는 시간에도 와이셔츠는 바깥으로 빼 입지 말라 했다. 말만 했으면 다행이다. 선생들은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어 묵인했다. 오히려 장려했다. 고교 동문인 아빠의 말에 따르면, 토요일 오후에 3학년 선배가 교내 방송으로 1, 2학년 후배 모두를 운동장에 '집합'시켜 매질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욕을 입에 붙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만난 선생들은 그러했다. 불행한 나의 경험이 빚어낸 편견으로는, 그런 선생들에게 학폭이나 따돌림 따위의 것들을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강남의 집을 분양가로 넘기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우스운 일일 것이다. 나를 끝으로 불행이 그 명을 다했다면 좋았으련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학폭이나 따돌림, 무능한 선생 따위의 소재들이 《스위트홈》이나 《경이로운 소문》과 같은 오늘날의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게 아닐까 싶다.


괴물화가 진행되는 차현수에게 손을 먼저 내민 것은 국어 선생이다. 휘둘러야 할 때를 알아 칼을 휘두르며, 왕 근육 괴물에게도 당당히 맞선다. 제초기 칼날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산화하는 모습은 초간지라 할 수 있다.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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