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사건’을 보고 다시 떠오른 나의 선생들
초등학교 2학년 때일 거예요. 여름 방학이 끝나서인지, 추석 연휴가 끝나서인지. 아무튼 오랜만에 학교에 간 날이었어요. 요즘도 초등학교에서 조례 같은 걸 하는지 모르겠지만, 조례 시간이랍시고 선생이 앞에 서 있었어요. 뭐, 물론 그 시절 선생들은 늘 앞에 서 있었지만. 그때 제가 갑자기 선생한테 질문을 했어요.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선생님, 선생님. 우리 학교 운동장에 요만한 운석이 떨어지면 정말 학교가 다 터져버리나요?”
뭐 그런 게 갑자기 궁금했을까요, 저는, 하하.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던 사촌형한테 그런 이야길 들은 거죠. 사촌형은 왜 뜬금포로 그런 이야길 꺼낸 건지는 모르겠어요. 초딩 앞에서 똑똑한 척이라도 하려 했나 보죠, 흐흐. 그런데 그때의 저는 그게 기억에 남았나 봐요. 이 주먹만한 돌맹이가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지면 초등학교 하나가 사라질 수도 있다니. 그런데 꼭 그런 무슨 아홉 살에게 가해진 지적 충격 같은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냥 무언가 신기한 이야길 꺼내서 선생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부끄럽지만, 저는 그런 아이였거든요. 관종 같죠, 흐흐.
어쨌든. 선생이 뭐라 말했게요? 그 중년의 여자가 나한테 뭐라 했냐면요.
“무슨 쓸데없는 소릴 하냐, 넌? 조례 시간에 운석이 왜 나와, 운석이. 하여간 너는 말이 너무 많아 문제다, 이 촉새 같은 놈아.”
이렇게 핀잔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불쾌해서 그랬을까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홉 살짜리 어린 노무 식빵 색희가 감히 선생의 말을 끊다니. 근데 제가 그 여자 말을 끊었던 거 같지도 않아요. 아무튼. 그 여자가 한 말에 친구들은 자지러졌어요. 또 애들은 ‘촉새’ 뭐 이런 거 그 뜻은 잘 모르지만 어감 같은 게 좀 특이해서 들으면 막 재밌어하고 그러잖아요. 그때 기분이 아직 내 머릿속에 있어요. 창피함? 수치심? 친구들이 절 비웃는 것 같았거든요.
웃기지 않아요? 아홉 살짜리더러 ‘쓸데있는 발언’을 요구하는 게 말이나 되냐 이 말이죠.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다닐 동안 그 중년의 여자를 2년이나 보고 살아야 했네요. 여덟 살에도 걔가 우리반 담임이었거든요.
돌이켜 보면 말이죠. 초등학교 다니면서 만난 선생 중엔 같잖은 선생이 참 많았어요. 말 그대로,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이 많았다고요. 열 살에 만난 선생도 기억나네요. 걔도 중년 여자였어요. 이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중년 여자 혐오자 같기도 하네요. 뭐 그렇게 보시든 안 보시든 상관은 없고요, 헤헤. 아무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잘못을 했나 봐요. 그래서 벌을 받아야 했나 봐요. 학교 수업 다 끝나고 집에 갈 시간에 나 보고 교실 앞에 무릎 꿇고 있으래요, 그 여자가. 지가 올 때까지 그러고 있으라면서. 근데, 한 세 시간 지났나? 무릎은 오지게 아픈데 그 선생이란 것은 안 오는 거예요. 아파서 몸을 이리 비틀고 좀 있다가 저리 비틀고 좀 있다가 하면서 오지게 존버 때리고 있었죠. 그때 걔가 그러고 있는 저를 본 거예요. 발견한 거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교실에 두고 온 걸 찾으러 왔던 건지, 아니면 우리 교실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던 건지 그건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걔는 저를 보고 놀라더라고요. 그러고 그 여자가 뭐랬는줄 알아요? 그 여자가 뭐라 했냐면.
“아직도 있었냐? 거, 미련하게. 그냥 가라.”
마흔은 더 처먹었을 거 같은 선생놈이 겨우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흐흐, 쓰벌. 그때 처음 알았어요. 무릎을 오래 꿇으면 일어서려 해도 다리에 힘이 안 들어 간다는 거? 칠판 쪽에 있던 벽을 잡고 겨우 일어나가지고, 아유. 학교 밖으로 나갈 때까진 계속 다리를 절었던 거 같아요. 이게 열 살짜리 한테 할 짓이냐고.
아, 중년 여자 혐오자 혐의에서 벗어날 만한 증거 하나 생각났다. 말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옆 반 담임이었던 거 같은데. 걔는 중년 남자였거든요, 헤헤. 옆 반 교실을 지나가다가 봤어요. 다섯 명? 아니, 여섯 명? 아무튼 뭐 그쯤 되는 친구들이 교실 앞에 불려 나와 있더라고요. 그 중년 남자가 남자 애 뺨을 그냥 후려 갈기는 거예요. 어린이들 보는 앞에서. 돈 안 내고 밥 처먹은 놈이라고 걔가 그렇게 말한 걸 들었던 기억이 나요. 웃기지 않아요? 요즘 그런 말 있잖아요.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세기말 한국 상황. 내가 그걸 어떻게 버텼지? 나 쫌 쎈가 봐요, 흐흐. 씨벌.
며칠 전에 그 소식 들었죠? 어떤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죽었다잖아요. 자살이래요, 자살.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같잖은 선생들, 그러니까 멍텅구리 같은 선생들 손에서 살아남은 강한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지금은 부모가 되었을 거예요. 걔네들도 자기 애는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을 거고요. 근데 그 부모가 된 친구들은 안 무서울까 싶은 거죠. 가끔씩 내가 어릴 때 배운 동요를 내 조카도 학교에서 배웠다고 하는 걸 보면, ‘흠, 학교는 어쩌면 그대로일 수 있겠군’ 하고 좀 찝찝해지는 그런 느낌? 물론 좋은 건 쭈욱 이어 나가야 하는 게 옳다고 하겠지만, 아니면 뭐 그저 동요일 뿐이니까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그런 별 거 아닌 게 우연의 일치로 내 눈 앞에 딱 하고 벌어지면 덜컥 겁이 나는 그런 거? 뭔 말인지 알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잖아요, 흐흐. 그 부모 된 친구들도 그런 불안이 없었겠냔 말이죠.
근데요. 이게 개 슬픈 일인 게, 그게 불안으로만 있었으면 참 다행일 텐데, 요즘은 그런 친구들이 자기 애 선생을 오지게 괴롭힌다고 하네요. 자기보다도 한참 어린 그런 선생을 말이죠. 요즘은 학부모가 밤이고 낮이고 할 거 없이 선생 개인 폰에 연락을 한다고 하더군요. 자기 남편이 법조인이라고 협박도 한대요. 나, 판검사요, 에헴, 흐흐, 시벌. 세기말 갬성으로 파이팅까지 오져버리는 부분. 난 이런 사람 못 봤는데, 뉴스에 나오는 거 보면 이런 사람이 있대요. 네? 그걸 어떻게 믿냐고요? 에이. 그래도 뉴스는 믿읍시다.
그나저나, 그 중년의 여자랑, 그 중년의 남자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이제 선생질은 그만 뒀겠죠? 같잖은 선생질도 선생질이라고 매달 따박따박 연금 받아가면서 말이죠. 맛있는 거도 많이 먹고. 주식 투자 한답시고 생전 관심도 없던 친환경 에너지 친환경 에너지 드립 치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 같잖은 것들은 며칠 전 자살 사건을 두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말세다 말세, 쯧쯧. 뭐 이러고 그냥 넘어갈까 무서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