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나를 향하고 있다. 마침 나는 패널티 박스 안에, 그것도 오른편에 골대를 아주 가까이 두고 서 있다. 머리를 잘만 갖다 대면 바로 골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도 골망을 출렁이게 하고도 남을 그런 골 말이다. 기회는 찬스다. 본능이 그렇게 말한다. 공이 내 이마에 닿는 찰나 고개를 잽싸게 골대 쪽으로 틀어버렸다.
눈을 감은 탓일까? 공은 골대를 지나, 생각보다 많이 오른쪽으로 꺾여 날아간다. 이런 젠장! 사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전부터 골 결정력이 부족했던 나다. 이대로 아쉬워하고 말 것인가. 공이 그렇게 날아갔다 하더라도 기회까지 날아가버린 건 아니다. 공은, 박스 안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간 우리팀 선수 앞으로 떨어지고 있다. 오픈 찬스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침착하게 마무리하던 꽤나 믿을 만한 녀석이다. 그의 깔끔한 발리골을 기대해 본다. 벤치에서는 곧 함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젠장. 이번엔 꽤나 놀랍다. 너무나도 꺾여 맞은 탓인지, 공은 다시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키를 넘어 내 뒤로 떨어지려 한다. 느껴진다. 상대 수비수의 거친 숨소리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하든 이 혼전 상황을 살려야 한다. 골대 근처로 공을 붙여야겠다. 그대로 골망에 꽂혀버리든, 우리팀이면 아무에게로 가버려라 하는 심보로 공을 뒤로 차 보낸다. 공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나 역시 힘껏 날아오른다. 보아라. 나의 씨저스킥을 말이다.
제대로 얹혔다. 다만, 그게 공은 아니었다. 쾅! 발등에 얹힌 건 이케아 피엘보였다. 파티션이랍시고 침대 옆을 막고 서 있는 그 피엘보였다. 아, 꿈이었구나. 슛돌이 중에 슛돌이, 과연 그게 나다. 겜돌이랑 슛돌이는 믿고 거르라 하던데….
발등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온다. 차라는 공은 안 차고 가구를 찼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누구랑 함께 잔 게 아니라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건 좀 쎈데 하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고통도 걱정도 나의 늦잠마저 밀어낼 순 없었다. 다시 잤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디는 순간, 고통은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나 잊은 거 아니지?’ 하는 아침 인사라도 건네는 듯 말이다.
오늘은 정형외과에 가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서 있기도 앉아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마침 잘 됐다. 가는 김에 발에 엑스레이도 찍어달라 해야겠다. 발등에도 뼈가 많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만 봐서는 뼈에 금이 간 건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하였다. 뚱뚱해진 발등을 봐서는 그렇다고 보고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다고도 하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그렇게 깁스를 하게 되었다. 오, 신이시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병원을 나선다. 제사가 있어 기차표를 끊어둔 게 생각난다. “엄마, 나 다리 부러진 거 같아. 꿈에서 축구를 했거든. 제사 못 가겠는데?” 엄마가 말한다.
그러니까 엄마가 그랬잖아. 축구 너무 격하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자꾸 다치니까 그러는 거야.
"알겠어." 전화를 끊는다. 음…. 아니, 잠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