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7 리그 3라운드였나 KA리그 17라운드였나, 그 두 경기는 며칠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아무튼 나는 경기 전 준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웜업이라고도 하지. 다리 스트레칭을 할 차례였다. 앞으로 쭉, 옆으로 쭉. 이젠 뒤로 할 차례. 허리를 숙이며 오른쪽 다리를 뒤로 힘껏 들어 올렸는데, 거기서 그만, 아아악. 왼쪽 가랑이가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두 경기가 끝나고 며칠 후 샤워를 하다가 왼쪽 허벅지 안쪽에 피멍이 올라온 걸 발견했다. 눌러서는 모르겠지만 다리를 뻗으면 통증이 있었다. 수비수가 다리를 뻗지 못한다니.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훈련장엔 계속 나갔다. 다리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고 감독에게 말했더니 그는 내게 옆에서 훈련 보조 느낌으로 패스만 뿌려 달라고 했다. 왼쪽 다리를 뻗지 않는 선에서 조심히 움직이며 공을 뿌리고 있는데, 거기서 또 그만, 아아악. 성모가 무릎으로 내 왼쪽 허벅지 바깥쪽을 찍어버린 것이다. 흔히들 ‘마비킥’이라 하지.
성모가 마비킥을 꽂아버리기 며칠 전, 이미 나는 안 좋은 예감에 이미 정형외과를 찾아갔었다. 주사 치료 오늘 한 거, 다음 주에 또 하는 걸로 하죠. 의사의 말대로 나는 한 주 후에 다시 정형외과를 찾았고, 의사는 초음파 검사기로 전에 봤던 그곳의 상태를 다시 보려 했다. 그리고 검사기를 엉뚱한 곳에 대고 더듬더듬하고 있었지.
"선생님. 저… 그쪽이 아니라 그보다 안쪽인데요?"
"아, 맞다. 그랬죠? 죄송해요. 그런데 여기도 멍이 들었는데?"
"아, 네. 거기는 며칠 전에 부딪힌 거예요."
"또요? 혹시 환자분, 운동하시는 분이세요?"
"그저 취미를 진지하게 하는 편이에요."
"여기도 심하네, 멍이. 한동안 푹 쉬세요. 운동하지 마시고요."
네, 라고 반성하는 듯한 목소리로 답은 했다만 사실 그럴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근육이 찢어진 게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다쳐도 다쳐도 계속 하게 되는 것이 축구였다.
2015년이었던가? 독일 친구들과 함께 폴란드로 건너가 참가한 축구 대회. 그리고 16강 전. 나는 상대 수비수의 깊은 태클을 피하지 못했고—피했다면 곧바로 상대 골키퍼와 1:1 찬스였는데—그래서 땅으로 고꾸라졌다. 얼굴로 떨어질 뻔한 것을 나도 모르게 피했고, 그래서 어깨로 떨어졌는데 당장은 괜찮은 것 같아서 경기장 밖에서 쉬고 있다가 결국은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다. 얘들아, 나 여기 뭐가 튀어나온 거 같아. 폴란드 포즈난(Poznań)이라는 소도시에 있는 어느 병원, 의사는 쇄골이 똑, 하고 부러졌다고 했다. 수술을 여기서 할 건지 독일로 가서 할 건지 정하라 했고, 왠지 여기서 수술을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만큼 낡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독일에서 수술을 받겠다고 했다. 독일로 떠난 2주간의 여행에서 1주 정도를 그렇게 병원 신세로 보내야 했다. 와… 벌써 10년 전 일이라고, 그게?
이런 적도 있었지. 하루는 동고FC의 훈련 중 상대의 슛을 막으려다 머리에 공을 맞았다.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준세와 대화를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준세라는 친구와 그렇게 긴 대화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꿈을 꿨던 것이다. 공에 맞은 순간부터 집에 가는 버스를 탈 때까지 기억이 없다고, 그저 전에는 한 번도 대화해 본 적 없는 친구와 아무렇지 않게 긴 대화를 한 기억이 있을 뿐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회사에서 했더니 뇌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하는, 듣기만 해도 무섭고 실제로 문제가 생겼다 해도 뭘 어찌해야 하나 싶은 그런 이야길 듣게 되었다. 위이이잉, 하는 그런 기계에 들어가서 검사 같은 걸 받아야 하나.
어디 그뿐일까. 수비수로 뛰고 있는 나는, 상대의 공을 빼앗으려고 태클을 하는 일이 잦았다. 오른발 잡이라 그런지 오른발을 뻗으려고 왼쪽으로 넘어지는 일이 많았고, 그만큼 왼손으로 땅을 짚는 일도 많았다. 손목에는 늘 힘이 가해졌고, 그래서 손목이 삐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래, 맞아. 한 번은 부러진 적도 있었지. 아까 그 정형외과, 거기는 내가 동고FC에 입단한 후로 마치 편의점 드나들 듯 드나들던 그런 정형외과였다. 하루는 왼손이 삐었다고 가고, 하루는 오른손이 삐었다고 가고. 손목 치료를 우선적으로 하느라, 고질적으로 아픈 발목은 그냥 냅두고 있었다. 지금도 발목이 아주 시린 상태이다.
주변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자꾸 다치는데 축구를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취미를 뭐 그리 무섭게 하냐고. 그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거니 하면서 웃어 넘길 수 있는 말인 건 알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과연 우리가, 몸 상하면서까지 무언가에 집착해 본 게 있을까?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주는 것도 아닌 그런 일에 말이다. 우리 어른이라는 종족들은 어쩌다, 공인 영어 성적을 줘야 영어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인스타그램에 뽐낼 만한 복근을 줘야, 아니면 월요병도 거뜬히 버텨낼 체력을 줘야 운동이란 것을 하게 되었을까?
나는 아파도 계속 하고 있다. 왜냐하면, 할 말은 없다. 그냥 좋아서, 라고 하기엔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생각했을 때 축구가 그냥 좋은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산이 있어 그냥 오르듯, 나는 그렇게 훈련장에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