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KA리그 22라운드가 있는 날이었다. 상대는 레오FC. KA리그에서 하위권에 있는 팀이지만,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는 팀이다. 나는 1쿼터 선발로 투입되었고, 레오FC의 폭풍 같은 공세를 버티며 30분을 뛰어다녔다. 2쿼터에도 선발 투입되었고, 여전히 그들의 공세는 폭풍 같았으며, 결국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한 15분 뛰었나?
"성호야, 그냥 앉아! 그 자리에 앉으라고!"
플레잉 코치 준형이 그렇게 소리쳤고,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피치 위에 앉았다. 왼쪽 무릎에서 통증이 스쳐지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왼쪽 종아리에는 쥐도 올라왔다. 이런 젠장. 주심은 경기를 잠시 멈춘 다음 나에게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벤치에서 친구 둘이 황급히 달려 나와, 한 명은 내 다리를 풀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무릎에 스프레이 파스를, 그것도 참으로 많이 뿌리고 있었다. 지이이이익. 아, 거기 까진 곳이라고. 파스는 안 돼. 상태 점검을 마친 그들은 벤치를 향해 손짓으로 안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성호야, 나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에서 걸어 나왔다.
감독은 내 상태가 어떤지 물었고 나는 왼쪽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그랬더니 감독은 오늘은 더 뛰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KA리그에서는 30분씩 세 쿼터로 나누어 경기가 진행되고, 한 쿼터에서 교체 카드는 세 장, 그렇게 경기 전체에서는 총 아홉 장을 쓸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미 2쿼터 교체 카드 세 장을 모두 써버린 터라, 우리는 나 없이 열 명이서 15분 정도를 더 싸워야 했다. 비록 아프긴 했지만 근근이 뛴다면 더 뛸 수도 있었음에도 나는 더 뛰겠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렇게 말했더라도 감독은 아마 뛰지 말라고 했겠지만 말이다. 미안해요, 친구들.
그날 2쿼터에서만 상대에게 4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사실 나는 2쿼터 그 15분 동안 죄책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처음 두 실점은 모두 내 근처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는데 그게 다 내 탓 같았으니까. 몸도 말이 아니었다. 경기에 들어갈 때부터 다리는 무거웠던 터라, 1쿼터부터 양쪽 종아리는 씰룩씰룩 하고 있었다. 그리고 2쿼터에서 15분 정도 더 뛰다 보니 다리가 아예 먹통이 된 거지.
멘탈에서도 피지컬에서도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멘탈은 다시 부여잡으면 되고, 피지컬도 잠깐 나가서 급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돌아왔다면 더 뛸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 멘탈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 무릎. 그게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라는 사실에 나는 완전히 넉다운이 되었다. 왼쪽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어. 오른쪽 무릎이야 이미 오래 전부터 고장이 나 있었던 거지만.
속이 상했다. 나 때문에 골을 먹었다는 죄책감과, 내 몸은 더 이상 경기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무기력감, 게다가 이젠 축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한데 섞여 경기에 싫증을 느끼게 됐달까. 그날은 더 이상 뛰고 싶지 않아 도망쳤던 것이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미안해요.
우울한 마음으로 전철에 올랐다. 경기장은 집에서 꽤 멀리 있었지만, 돌아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은 기분이었다. 무릎 강화 운동에는 어떤 게 있는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기에. 불가리안스플릿스쿼트, 데드리프트, 레그컬 등등. 보기만 해도 무릎이 강해질 것 같았고, 그래서 당장 헬스장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한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거기서 하는 말에 나는 곧 진정할 수 있었다. 휴식부터 하셔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