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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Sep 30. 2022

등단하신 거예요?

아뇨, 그냥 자까고(작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11월 브런치는 작가 활동 리포트를 발행했습니다. 리포트에서는 파키뉴란 녀석이 5년차 작가라고 말하네요. 5년 전,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서 글쓰기를 배웠고 특강에서 제출한 글 몇 개를 저장하여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더랬죠. 바쁘지 않다면 한 달에 한 번, 바쁘다면 반년에 한 번 글을 발행하리라 하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키지 못할 것 같았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작가란 무엇일까요? 연기를 해야 배우라 할 수 있고, 노래를 해야 가수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는 글을 써야 작가라 할 수 있겠죠. 어제는 글을 썼지만 오늘은 쓰지 않았으니 어제만 작가였고 오늘은 작가가 아니라는, 뭐 이런 표현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작가였습니다' 하며 나를 소개하기엔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네요. 


그나저나 작'가'는 왜 작'자'가 아닐까요? 작가, 화가 등에서 볼 수 있는 '~가'는,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라 합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르니 작가라 하기엔 여전히 쑥스럽습니다. 한편, '전문적'이란 말은 어떤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그 일을 잘한다는 걸 뜻한다고 하네요. 글쓰기 지식이 상당한지 모르겠고 글쓰기 경험마저 상당한지 모르겠으니, 내가 작가가 맞는지 역시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내 글을 읽는 사람은 고작해야 열 명입니다. 이제껏 그랬어요.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작가가 맞군요" 하는 소리를 듣는 게 내 꿈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면 "언제 등단하시게요?"나 "곧 등단하시는 거예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등단해야 작가일까요? '등단한다'는 언론사나 문예지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걸 두고 하는 말이래요. 나는 등단한 적 없습니다. 등단을 꿈꾼 적도 없지요. 유튜버 저마다는 방송국 공채 시험에 합격한 적 없지만 꽤나 많은 구독자 수를 자랑합니다. 어떤 정치인은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당선된 적 없지만 여럿에게 지지를 받아 당 대표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각하니, 등단하지 않아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란 낙관이 내 주제를 잠시 망각하게 합니다.


유시민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냈지만 등단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분이 작가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을 내면 작가일까요? 작가라 할 만한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세상입니다.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에는 형식에 구애됨 없이 업로드된 글이 많아요. 그중엔 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글이 적지 않더군요. 은근슬쩍 내 글도 '작품'인 것처럼 말했네요. 작품은 작품이죠. 졸작인 게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아, 유시민 그분, 등단했다고요? 흠.


요즘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책을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 모르지만 말이죠.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전히 내가 좋아 글을 쓴다 하는 '즐기는 자' 코스프레가 자의식 과잉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을 써야 비로소 작가가 되는 걸까요? 그런 사람은 얼마나 많아야 할까요? 내게 추천될 정도의 유튜브 채널은 엄마, 아빠 할 것 없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의 유명세를 얻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곧, 그 채널의 구독자는 50만 명도 안 된다는 걸 발견합니다. 나만 아는 채널이라 하더라도 이미 유명합니다. 아무튼 간에, 어제도 오늘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만 명도 안 될 테니 역시 나는 작가가 못될 것 같습니다.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구간에는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이 많습니다. 몇 해 전 『안OO의 생각』이나, 요즈음 하여 많이 팔리는 『OOO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가 그런 책들이라 할 수 있겠어요. 유명해지면 대형 출판사에 연락하여 내 돈 한 푼 안 내고 책을 낼 수 있다고 하네요. 어떨 땐 도리어 출판사가 먼저 연락한다고 합니다. 반드시 글로 유명하지 않아도 좋은 것 같아요. 어느 대학의 교수라든지, 어느 기관의 우두머리라든지 하는 사람들도 책을 내고 이는 많이 팔립니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으련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명문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무섭습니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니요. 사람이 트렌드 컬러를 만들고 트렌드 컬러가 사람을 만듭디다. '사람이 시험을 만들고 시험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지어낼 수 있겠어요. 등단하기, 출판하기, 많이 읽히기(아니 많이 팔기), 이름을 알리기 등등, 사람은 사람이 만든 '시험'으로 '사람'인지 아닌지, '작가'인지 아닌지 판단됩니다. 애석하게도 나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등단도 하고 싶고, 책도 내고 싶고, 그래서 그걸 많이 팔고도 싶어요. 내 욕심을 알기에 '나는 작가입니다'라 말하기엔 여전히 민망하고 쑥스럽습니다.


'글을 써야 작가', 아무래도 나는 이 정의가 마음에 듭니다. 내가 정하지 않은 '트렌드 컬러' 혹은 '시험' 성적이 나를 좌절시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 하는, 일종의 '신포도 드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러면 어때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작가가 되었는걸요.


리드텍스쳐 1호 산문집 중 '작가가 된 순간(파키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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