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 훈련이 있던 날이다. 2월쯤이었나? 축구화를 신고 한참을 뛰어도 발가락이 녹지 않아 감각이 쉬이 돌아오지 않을 정도의 그런 날씨였다. 간만에 찾은 노량진 축구장. 지난 해 동작구 K-7 리그에 참가하면서 한 달에 많으면 두 번, 적으면 한 번 꼴로 왔던 바로 그곳이다. 달라진 건 계절뿐, 그 넓은 운동장은 그대로였다. 리그 2경기에서 우리가 패배한 날, 나는 여기 수산 시장에서 10만 원짜리 회를 사 먹었지.
화요일 오전 10시. 훈련은 그때 시작한다. 우리가 홈구장이라 부르는 운동장은 따로 있는데, 보통 그곳은 10시 전에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노량진 축구장에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수산 시장 사람들인가? 개중엔 폼이 좋은 아저씨가 하나 있었고, 자세히 보니 ‘59년 왕십리’, 그 김흥국이라는 축구 선수인지 가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런 연예인도 봤는데, 다른 데 오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하는 재미라 할 것도 하나 있었다.
그날도 나는 남들보다 일찍 도착했다. 9시 20분 정도? 해야 할 일이 내겐 따로 있었으니까. 작년 가을부터였나, 나는 혼자서 훈련 전에 체력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인터벌. 셔틀런이라고도 하고 빕테스트라고도 하던데 나는 그냥 인터벌이라 부른다. 짧은 거리를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뛰기.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은 점점 더 짧아지게 하고.
체력 운동에는 이만한 게 없다고들 하는데, 내가 인터벌을 하는 이유도 그런 것과 비슷했다. 당시 동고FC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선수의 체력을 측정했다. 거기서 높은 성적을 내고 싶었달까. 남들 다 지쳐 쓰러질 때 끝까지 남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는 것, 그래서 나 이렇게 오래 뛰는 사람이다, 하고 자랑하는 것, 그게 하고 싶었으니까. 기술도 스피드도 없는 내가 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체력을 키우는 것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보통 그렇게 인터벌을 하고 나면 훈련은 시작도 안 됐는데 내 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게 되었다. 그날도 그랬고.
훈련이 시작되었고 팀 전체가 워밍업을 끝냈다. 감독은 다음 훈련 세션을 설명하고 있었고, 그때 저기 지각생 하나가 뒤늦게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그 녀석이었다. 어이구, 지훈님, 안녕하세요. 감독이 그를 맞이했다.
김지훈. 그 녀석은 ‘선출’, 즉 선수 출신이다. 나처럼 아마추어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프로 선수라는 꿈을 품고 평생 축구를 해 온 녀석이다. 한때는 K-3리그, 그러니까 준프로 리그에 참가하는 팀에 소속된 적도 있지만, 어찌된 건지 그 팀에는 계속 속할 수 없게 되어 훈련할 곳을 찾다가 이 동고FC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상위 리그로 도전하길 원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작년 늦여름 즈음해서 준프로 팀에 이적하는 데 성공했다. 훈련장에서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해 5월이었다. 그때도 노량진 축구장이었네.
지훈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밉다고 해야 할까 무섭다고 해야 할까. 무서워 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네놈이 나는 참 밉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미워하고 있다는 것도 옳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뭐든.
측면 공격수인 그는, 비록 주전은 아니지만 아무튼 측면 수비수인 나와 합을 맞춰야 할 일이 적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는 내게 실망할 일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나중 가서는 체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딱히 이래라 저래라 하고 경기 중에 지시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사람에게나 잘하는 사람에게나 한결 같은 얼굴로 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잘하는 친구들이랑은 농담도 잘 주고 받고 하드만! 치…. 나랑도 친하게 지내자. 아무튼 그를 보면 그런 피해망상 같은 게 일곤 했고 그래서 울렁증 같은 걸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작년 몇 달 간 함께 훈련한, 정이라면 정인 그런 게 있었는데, 먼저 인사 안 하는 건 좀 좀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서 나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지훈님, 오랜만이네요.”
패스 실패, 볼 간수 실패, 오프더볼 움직임 실패. 그날 훈련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성호야, 성태가 너한테 공 줄 게 뻔한데, 그럼 공 오기 전에 미리 주변을 살폈어야지. 감독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리 상황을 판단하는 일에도 난 실패했다. 실수를 만회하려고 무리를 하다 보니 일찍 지치게 되었고, 일찍 지쳐버렸으니 실수하는 일은 더 많아졌다. 아주 민망하군. 이때 좋은 방법이 있지. 바로 남 탓하기. 내 실수를 다른 녀석 탓으로 돌리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만만해 보이는 이들에게 고함을 치기도 했다. 훈련이 끝났고 여느 날과 같이 나는 홀로 집으로 향했다. 오늘 나, 정말 별로였지.
지훈은 꾸중을 아주 않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그날도 그는 내게 아주 간만에 한 번 꾸중을 했다. 성호야, 너가 자꾸 엉뚱한 데로 움직이니까 다 틀어지잖아. 답답하다는 목소리. 그래서 주눅이 들었던 것일까? 상위 리그에서 뛰는 녀석이 뭐 좋다고 여기 와 가지고 사람을 날 이렇게 주눅들게 하는지. 나는 집에 가면서 마음속으로 그런 원망 섞인 소리를 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다시 잘해 보자고, 그렇게 웃으면서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란 놈은 칭찬에 약하니까. 또 이렇게 남 탓을 하고 있군.
그렇다. 나는 축구를 못 한다. 지훈이 있든 없든, 오늘 내가 한 실수는 사실 늘 하던 그런 실수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았다. 슬펐다. 난 행복하지 않아!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축구를 한다지만, 그날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경기장을 나섰다. 사실 이런 일 역시 늘 있어 왔다. 축구를 끝내고 기뻤던 적이 최근에 과연 몇 번이나 될까?
나는 왜 취미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을까? 축구란 내게 무엇일까? 나는 과연 축구를 좋아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나는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으로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