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고FC에서 축구를 한다. 내 주요 포지션은 측면 수비수. 윙백이라고도 하고 풀백이라고도 하지. 입단하고 2년 정도는 내 생일 5월 9일을 뜻하는 59번을 등번호로 달고 뛰었지만, 지금은 3번이 되었다. 호날두, 손흥민의 7번이나 메시의 10번처럼, 3번도 보통 그 자리, 바로 측면 수비수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갖는 번호라고 했지만, 올해 등번호를 새로 배정받을 때 약간의 민망함은 나 몰라라 하면서 한 번 도전해 보았다가 얻게 된 번호였다. 등번호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또 하지.
동고FC는 ‘동네 축구 고수’, 즉 ‘동고’라는 유튜버가 운영하는 아마추어 축구단이다. 물론, 축구단과 축구팀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마 그건 시스템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그에 맞게 운영 인력이 있는지, 뭐 이런 것들로 구단이냐 아니냐로 나뉘는 것 같지만, 나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동고FC는 축구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건 부르는 사람 마음이라고? 뭐, 하긴, 그렇지.
동고, 그는 비선출 아마추어가 스페인에 축구 유학을 떠나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을 담은 영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22년 어느 날. 동고는 인스타그램에서 공모를 했다. 이제는 팀으로 도전한다. 이것을 주요 메시지로 해서, 축구팀을 창단할 것이고 함께할 사람은 지원하시라는. 그 공모를 보았을 땐 이미 영호와 위스키 한 병 정도를 다 비워갈 무렵이었다. 영호는 내 축구 실력을 알아주는 몇 안 되는 친구라 할 수 있는데, 동네에서 고수가 되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한 번 지원해 보라는 그의 말에, 이미 취한 기운이 가득했음에도 한 자 한 자 눌러가며 구글 폼을 작성했던 것이다.
선호하는 포지션은 무엇인가요? 나, 윙백 되지? 네. 오케이. 수미(수비형 미드필더) 되지? 네. 오케이. 그럼 공미(공격형 미드필더) 되지? 흠…. 아니요. 영호는 취했지만 진지했고, 그래서 딱 잘라 아니라고 했다. 조금 서운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나는 그와 키득거리며 질문 하나하나를 채워가고 있었다.
며칠 뒤, 동고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입단 테스트는 2주 간 화요일과 목요일, 이렇게 나흘에 걸쳐 진행 될 것이다, 아침 11시까지 상암 난지천 운동장으로 오면 된다. 나흘이라니. 아마추어가 그런,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테스트를, 그것도 입단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본다는 말에, 내가 뭐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테스트라고 해서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하나는 패스 게임, 다른 하나는 연습 경기, 이렇게 단 두 개만으로 테스트가 구성됐다. 패스 게임은, 골대가 없는, 그래서 진영 같은 게 없는, 아군과 적군만 있는 곳에서 공을 뺏고, 뺏었으면 다시 뺏기지 않게 패스를 하는 게임이다. 물론, 혼자서 드리블을 해도 되긴 하지만. 연습 경기는 11:11 경기를 뜻하는데, 나는 거기서 4일 동안 미드필더로 뛰었다. 아, 생각해 보니, 이사하다 침대 프레임에 발가락을 찧어서 하루를 못 갔으니까, 나는 3일만 갔다 왔구나.
결과는, 합격.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운영을 할 예정인데, 나는 A팀에 배정되었다고 했다. A팀이 앞에 있는 문자니까 더 잘하는 팀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우쭐해졌다. 그러는 것도 잠시, 곧 김이 새고 말았다. 테스트 기간 동안 봐 왔던 다른 미드필더들이 그때 머리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팔팔한 20대 친구들. 나는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하아, 주전은 못 되겠군.
아니나 다를까. 감독은 나를 측면 수비수로 이용했다. 2022년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랬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감독은 나를 왜 A팀으로 뽑았을까? 아니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