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있을 때 보니 환자들은 퇴원 전 사회에 나가기 위해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치료는 대개 전날보다 조금 더 강도를 높여가며 진행한다. 근육을 기르도록. 하지만 환자가 다치지 않도록 무리는 하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재활치료를 떠올리며 조금씩 뇌를 움직여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머리가 둔해졌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오랜 기간 이어지자 인정해야 했다. 나의 뇌가 달라졌음을. 우울한 뇌는 정상적인 뇌와는 상태가 다르다고 한다. 내 경우 느려터지고 집중력이 떨어져, 좋아하던 책 읽기를 멈추었다. 전에 하루에 다섯 가지 주요 일을 처리했다면 달라진 뇌는 하루 한두 가지 처리도 버거워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뇌가 잘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절차가 있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레고 블록을 쌓을 때 아래부터 차근차근 올려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전에는 뭐든 빨리 처리하는 편이라 성격이 급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뇌가 달라진 후 레고 블록을 쌓아나갈 줄 몰라서 힘들어했다. 블록을 쌓다 무너뜨리는 어린 조카가 떠올랐다. 깨달았다.
'나는 뇌를 다쳤구나.'
쓰러진 후 모든 일을 답답해하던 아버지 모습도 떠올랐다. 그럴 때면 아직 젊어서 쓰러지지는 않은 걸 다행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확실히 느려졌다, 나의 뇌는.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내게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걷기와 여행이다. 당연히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이번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과거의 내게 감탄하고 있다.
'과거의 나는 얼마나 영민하고 때론 무모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나.'
남들보다 비교적 늦게 첫 해외여행을 갔다. 스물일곱 무렵, 첫 여행지는 태국.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비행기표만 끊고 방콕에 내렸다. 심지어 호텔도 예약하지 않고. 관광가이드북 한 권 사들고 비행기에 올라서 도착하기까지 다섯 시간 동안 가이드북을 다 읽었다. 당일 도착해서 가이드북 안내대로 카오산로드 가서 배낭여행객들 구경하고, 환전하고, 오후 4시 지나니 어두워져서 그제야 방을 구했다. 하지만 없었다. 축제 기간이라 방이 하나도 없었다. 오후 5시가 넘으니 세상이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길 잃은 아이처럼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 흑인이 다가왔다. 자길 따라오면 좋은 방을 소개해주겠다며 말을 걸었다. 순진한 바보인 나는 그를 따라갔다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뒤늦게 bye!, 를 외쳤다. 그땐 좀 무서웠다. 결국 십여 개 숙박업소를 돌아다닌 끝에 겨우 여성 전용 도미토리 하나 구했다. 지금 생각해도 숙박업소 예약도 하지 않고 출발한 건 어이없는 일이다.
태국 이후 매년 해외여행을 다녔다. 혼자서. 남자친구가 있을 때도 혼자서 다녀왔다. 늘 별다른 준비 없이도 현지에서 적응을 빠르게 해 나갔다. 일할 때도 그랬다. 빠른 속도와 이해력, 소통력을 자랑했다. 하지만지금의 나는 전과는 다르다. 다시 좋아하는 여행을 가려니 항공권 끊는 것도 막막했다. 여행은 체크리스트가 많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간 그렇게 많은 여행을 다녔으면서.
'도대체 어디에 호텔을 잡아야 하는 걸까?
공항에 내려 어떻게 호텔까지 들어가지?
해외에서 인터넷은 어떻게 썼지?
지출은 카드 or 현금 뭘로 하지?
...'
느릿느릿. 하루에 하나씩 진행했다. 어찌어찌 항공권을 끊었고, 어찌어찌 찾아서 호텔을 끊었다. 조금씩 조금씩. 항공권과 호텔을 모두 결제한 날 걸음마를 새로 배운 기분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그래도 많이 나아졌구나.' 뇌에게 격려를 보냈다. 심리학에서 말하듯 작은 성취들은 뇌에 중요했다. 앞으로 다른 여행도 씩씩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기분이 좋아지면서 뇌에 좋은 바람이 부는 것만 같다. 나만의 재활치료도 속도가 붙었다고 느낀다. 때때로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말자', 결심한다. '하루 바삐 과거의 나로 돌아가야 해', 라고 욕심을 부려선 안 될 일. 빨리 하려고 애쓰다 보면 다시 뇌는 뒤죽박죽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아 쪼그라들지도 모른다.
실은 뇌가 달라지면서 좋은 일도 있다. 뇌의 일부분이 쪼그라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일부분은 힘을 확장한 것 같다. 전보다 눈물이 많아졌다. 원래 난 안구건조증이 있었다. 지금은 없다. 매일 운 덕분이다. 지난해 말엔 그만 좀 울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매일 울었다. 그땐 우울감이 지배해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이젠 마음 아픈 일도 없는데 조금 슬픈 영화를 보면 통곡을 하곤 한다. 배우가 울면 나도 운다. 거울뉴런이 발달한 것 같다. 길가다가 슬픈 생각을 하면 울고, 뉴스 기사를 읽다 피해자 생각에 운다. 대개 이성적이었던 나의 뇌가 이리 감수성이 풍부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마 당분간은 안구건조증 걸릴 일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크게 웃는다. 앞으로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감수성이 풍부해진 뇌를 얻었으니. 어쩌면 나의 뇌는 다친 게 아니라 변화했을지도 모르겠다. 꾸준히 연습해서 뇌가 처리 속도도 좀 더 올려준다면 세상 살아가는 데 오히려 좋을 것 같다. 전보다 따듯한 뇌를 가졌으니.
수년 전 여러 장애인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들이 했던 말 중에 오랫 동안 이해되지 않는 말이 있었다.
"나는 내 장애를 사랑해요!"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의 장애 덕분에 세상에 수많은 아픔을 이해했다 말했다. 정신장애인, 휠체어장애인, 뇌병변장애인들이. 어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세상을 증오하고, 내 장애도 증오했을 텐데. 그냥 멋있으라고 한 말들인 걸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뒤늦게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감히 비장애인인 내가 세상을 깊이 이해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