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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독자의 힘으로 슬로프를 달리다

Interview with 스토리펀딩 '다이애나프로젝트'


2017년 10월 스토리펀딩(storyfunding)에서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humanoid・인체와 유사한 형태의 로봇) 스키 로봇 제작을 지원하는 ‘스키 로봇, 다이애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36일간 1000만 원을 목표로 한 이 프로젝트에 약 1490만 원이 모였다. 오는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슬로프 위에서 기량을 펼칠 다이애나를 점검하는 데 한창인 엄윤설 교수를 만났다. 



그녀는 숙명여대 프라임사업단 교수이자 키네틱 아티스트(kinetic artist)로 남편인 로봇 공학자 한재권 한양대 융합시스템학과 교수와 함께 HERoEHS(히어로즈) 팀에서 스키 타는 로봇 ‘다이애나’를 만들고 있다. 



Q. 키네틱 아티스트, 조금 생소한 직업입니다.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미술 작품이 어떤 형식으로든 움직임을 포함하면 키네틱 아트(kinetic art・움직이는 예술)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조형물의 움직임을 다뤄요. 원래는 장신구 디자인으로 유학을 준비했지만, 유학 전 우연히 로봇 회사의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움직임’이라는 요소에 매료됐죠. 유학을 가서 결국 키네틱 아트를 공부했어요. 지금은 숙명여대 소속 로봇 디자이너로, 남편인 한재권 한양대 박사팀과 스키 로봇 다이애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스토리펀딩의 주인공 ‘스키 로봇 다이애나’를 소개해주세요.

‘다이애나’는 스키를 타는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예요. 1호기와 2호기 두 대의 쌍둥이 로봇이지요. 저희 팀에서 지난해 6월 작업을 시작했어요. 다이애나란 이름은 장애인 여성 스키 선수인 다이애나 골든(Diana Golden)에서 따왔어요. 



어릴 때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는데도 불굴의 의지로 전설적인 스키 선수가 된 그녀처럼, 역경 을 극복하고 정상에 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지요. 키는 120cm 정도 되고, 25kg 정도 나가는 숙녀입니다. 팔과 머리는 없는 상태지만요.


Q. ‘스키 로봇 챌린지’를 위해 다이애나를 만드셨는데 무슨 경기인지 궁금합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바로 다음 날인 2월 10일부터 12일까지 바로 옆 동네인 강원도 횡성 웰리힐리파크 스키장에서 열리는 특별 이벤트예요. 휴머노이드들이 세계 최초로 알파인 스키 경기를 치르는 거죠. 알파인 스키 4 종목 중에서도 다이애나는 방향, 속도를 조절하며 기문 사이를 통과해 활강하는 대회전 경기에 출전합니다. 



Q. 스키는 유연성이 필요한 종목인데, 로봇이 스키 타는 원리가 궁금해요.

다이애나는 알파인 스키 대회전 종목에 출전하는 게 목적이므로, 이동을 위한 보행 기능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 휴머노이드와는 완전히 달라요. 무엇보다 기문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다이애나의 눈은 렌즈가 두 개인 제드 카메라 1대, 스테레오 카메라 1대까지 총 세 개입니다. 속도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Global Positioning System)으로 확인하죠. 기울기를 측정하는 ‘자이로 센서(gyro sensor)’를 포함한 IMU(Inertial Measurement Unit・관성 측정 장치)가 일종의 달팽이관 역할을 해요. 양발에는 압력을 인식하는 ‘풋 센서(ofot sensor)’가 있고요.


Q. 아무래도 사람보다 훈련시키기가 까다로울 것 같은데요.

각종 센서를 통해 들어오는 값이 보행하는 휴머노이드와 다른데 선행 연구가 없다는 게 큰 어려움이죠. 게다가 로봇의 관절은 움직이는 정도에 한계가 있고, 경기를 치를 슬로프에는 날씨, 설질(雪質) 등 조정할 수 없는 변수도 있어요. 인간의 자세를 그대로 모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균형 잡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더 많아요. 그래서 국가대표 스키 선수 출신인 문정인 선생님이 코치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은퇴 후 서울대에서 운동역학을 공부하는 문 선생님이 사람과 로봇의 관절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이애나의 자세를 교정해주세요. 덕분에 다이애나는 ‘11자턴’, ‘A자턴’ 같은 인간의 동작을 모방할 수 있죠. 완벽한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인공지능도 활용하고 있어요. 머신 러닝을 통해 다이애나가 기문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중이거든요. 다이애나는 기문과 사람을 곧잘 구별해내고 있어요. 다리 각도, 에지(edge)에 대한 모션 제어 능력도 차츰 강화되고 있습니다.


Q. 훈련도 훈련이지만 더 큰 애로사항이 따로 있었다면서요?

경기를 치르려면 두 대 이상의 로봇이 반드시 필요해요. 로봇은 사람과 달라서 한 번만 잘못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파손될 수 있으니까요. 첫째가 미션에 실패할 것 같으면 둘째가 경기를 뛸 수 있도록 백업이 필요한데 다이애나는 불완전한 쌍둥이예요. 연구비 부족으로 2호기가 미완성 상태거든요. 아까 다이애나의 눈이 카메라 세 개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외형적인 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레이저 광선의 반사와 산란을 활용해 물체까지의 거리와 물체 형태를 인식하는 라이더(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센서입니다. 구입 비용이 한 대에 500만~700만 원이나 돼요. 돈이 없어서 하나에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초음파 센서 10개를 목도리처럼 달고 뉴질랜드로 전지훈련을 갔어요. 훈련을 해보니 초음파 센서는 값이 일정하지 않아서 못쓰겠더라고요. 빌린 라이더 센서를 달아 연습해보니 확실히 이 부품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Q. 로봇 한 대를 만드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라이더 센서와 IMU를 마련하는 데만 1000만 원이 훌쩍 넘게 들더라고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서 2억 원을 지원받았지만, 핵심 부품을 사는 데 10% 사용되고, 재료비만 7000만 원 정도 들어요. 여기에 저희 부부를 뺀 팀원 인건비, 전지훈련비, 외주 제작비까지 더하면 2억 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와요. 2호기는커녕 1호기 완성도 힘들겠더라고요. 다른 팀들도 사정이 비슷했을 거예요. 지난해 9월에는 수중에 딱 30만 원 남았어요. 너무 슬펐죠. 


Q.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토리펀딩을 진행하신 건가요?

처음엔 기업 후원을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남편인 한 교수가 정부의 ‘4차 산업혁명준비위원회’ 위원이라서 기업의 도움을 받았다가 구설수에 휘말릴까 봐 걱정되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몇 번 후원해본 스토리펀딩이 떠올랐어요. 게다가 제가 활동하고 있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자들의 모임)’에서 스토리펀딩 프로젝트에 매칭 펀드(matching fund)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스토리펀딩 목표 금액을 달성하면 목표 금액의 두 배가 되도록 나머지 금액을 지원해주는 거예요. 양쪽에서 펀딩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저희 프로젝트에 스토리펀딩을 접목하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시민들이 풀 사이즈 휴머노이드 제작에 직접 참여한 전례를 보지 못했거든요.



Q. 스토리펀딩 후원이 무척 성공적이었어요.

처음에는 500만 원을 목표로 하려고 했죠. ‘로봇을 만드는 데 사람들이 지갑을 얼마나 열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왕 하는 것 모험을 해보자 싶어서 1000만 원을 목표로 11월 25일까지 36일간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137건의 펀딩으로 1489만 7500원을 모으면서 목표 금액의 149%를 달성했어요. 덕분에 ESC 매칭 펀드로 약 5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도 추가로 후원받을 수 있게 됐죠. 라이더 센서를 구입해 1호기를 보강한 다음 2호기도 완성할 수 있겠더라고요. 스토리펀딩 덕분에 다이애나 2호기는 시민이 완성하는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가 되는 거예요.


Q.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스토리펀딩 플랫폼의 덕을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냥 펀딩이 아니라 ‘스토리’펀딩이잖아요. 글을 연재해 저희만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거예요. 스토리가 있어야 마케팅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서도 똑같아요. 연구하는 이야기,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낸 것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해요. 스토리펀딩 플랫폼의 또 다른 큰 장점은 ‘다음’이라는 포털 메인 페이지에 노출된다는 점이에요.



Q. 스토리펀딩을 통해 후원금 외의 도움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이 저희 프로젝트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도와주신다는 게 감동스럽고 큰 힘이 됐어요. 특히 한 분이 지속적으로 댓글로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엔지니어이신 것 같았어요.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분의 응원을 받는다는 게, ‘당신의 열정이 너무나 부럽고 보기 좋다’는 말을 듣는 게 감사하더라고요. 또 저희 연재 글을 읽고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에서 일하시는 분이 연락을 해오셨어요. 라이더 센서를 줄 수는 없지만 빌려줄 수는 있다고 하시면서요. 이렇게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센서가 맞는지 안 맞는지 헛돈을 쓰지 않고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이분께 라이더 센서를 빌려서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갔고, 라이더 센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굉장한 낭비를 막아주신 거죠.


Q. 후원자들과의 소통이 연구자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다 함께 이끌어가는 프로젝트가 되면 연구자로서는 굉장히 반갑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해요. 정부 프로젝트로 하는 연구라면 열심히 수행해서 좋은 결과만 내면 됩니다. 그런데 스토리펀딩으로 들어오는 후원금은 독자 여러분이 주신 마음이거든요. 마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금액이라는 실체로 잡히기 시작하니까 그 무게가 무거워요. 솔직히 굉장히 많이 두렵고, 겁나고, 부담스럽죠. 그럼에도 함께 만들자는 제안에 응답해주신 시민들의 응원에 많은 힘을 받았어요. 너무 감사해서 정말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지요.



Q. 후원자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펀딩 금액을 기준으로 리워드(reward)를 드려요. 3만 원을 보내신 분에게는 후원자의 이름을 새긴 다이애나 설계도에 한 교수가 서명을 해서 보내드립니다. 후원자와 같이 만든 로봇이니까 당연히 그분 이름이 찍히는 거죠. 5만 원 이상부터는 이 설계도를 보내드리고, 다이애나의 커버에 이름도 새겨드려요. 한글을 담은 이상봉 디자이너의 의상처럼, 다이애나의 커버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가득 차게 될 거예요.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된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후원자 명단이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죠. 전에 거기서 제 이름을 발견했을 때 정말 뿌듯했거든요. 그 기분을 느끼게 해드릴 겁니다. 더 큰 금액을 후원해주신 분들께는 소중한 사람의 이름도 함께 새겨드리고, 연구실에 초대해서 저희 팀원들과 다과를 나누며 직접 다이애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Q. 정부가 컬링 로봇을 비롯한 스포츠 로봇에 관심이 많던데요, 개발에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다이애나 프로젝트를 통해 또 다른 우승컵을 목표로 할 겁니다. 스키 대회가 끝나면 로봇 축구 대회 로봇컵을 노려볼 생각이에요. 로봇은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플랫폼이에요. 발만 바꿔 달면 스키 로봇이 축구 로봇도 되고, 디자인을 살짝 바꾸면 소셜 로봇이나 반려 로봇이 될 수 있거든요. 로봇이 인간의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도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로봇 스포츠가 중요하죠. 로봇 스포츠 대회는 연구의 시너지 효과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기술 발전 속도도 촉진될 수 있어요. 로봇컵처럼 스키 대회가 매년 열린다면 관련 기술이 가파르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로봇 동계 스포츠 대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 고, 또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대중이 로봇 스포츠를 통해 무엇을 느꼈으면 하시나요?

로봇 스포츠를 통해 로봇들이 경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시면 좋겠죠. 다만 그 이면에 깃든 연구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 휴먼스토리도 살펴봐 주시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로봇들의 경기는 사실 엔지니어들 사이의 각축전이라 저희들의 경기이기도 하니까요. 다이애나가 턴 한 번을 하는 데 연구원들이 쏟은 시간과 열정, 그 숨은 이야기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펀딩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Q. 궁극적인 연구 지향점이 궁금합니다.

저희는 진짜 사람 같은 휴머노이드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예요.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사람을 로봇이 대체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시죠. 그런데도 보다 완벽한 휴머노이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야만 하는 순간을 위해서입니다. 재난 현장, 화재 현장 등 사람이 목숨을 걸고 접근해야만 하는 곳에는 되도록 로봇을 투입하는 게 인간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니까요. 그 기능을 할 수 있는 궁극의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길에 스키 로봇과 축구 로봇 등이 징검다리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프로젝트에 다시 도전할 때 스토리펀딩 플랫폼을 잘 활용해보고 싶어요.



◼︎ 엄윤설 교수와 HERoEHS(히어로즈)팀의 스토리펀딩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30095





매거진 <Partners with Kakao>의 2호는 이렇게 구성됩니다. 

<Partners with Kakao> 2호 목차

-Hello, partners!

◼︎ partners

- 스토리펀딩 다이애나 프로젝트 엄윤설 교수 '로봇, 독자의 힘으로 설원을 달리다'(본 글)
- 1boon 푸드매거진 리얼푸드 '1분을 위한 고민'
- 카카오파머 제주당근 농부 유도균 '검은 흙 속에서 캐낸 진심' 
- 메이커스 with Kakao 반회담 '자활 넘어, 일자리 나눔까지'

-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들 : 2017 Kreator thank you party


◼︎ with Kakao

- 모두를 위한 연결 '카카오미니, 소리로 일상의 벽을 허물다'

- 제주 with Kakao '제주 이웃의 착한 소원을 들어드리쿠다'
- 같이가치 with Kakao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 꿈에 날개를 달다 with Kakao '헤이카카오, 우리 꿈에 날개를 달아줘'

- 카카오가 알려주는 카카오 활용법 : 카카오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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